의협 회장 도전장 낸 ‘노숙자 주치의’

민서영 기자 2024. 1.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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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용 부산·경남 인의협 대표
동료의사들 지지·응원 정운용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왼쪽에서 두번째)가 1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성당에서 대한의사협회 회장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22년째 부산 노숙인진료소 맡아
이주민·파업노동자 등 치료
현 의협과 달리 의대 증원 찬성
공공·지역의사제 도입 주장
“의협, 권익단체 성격 벗어나
민주적 전문가단체로 개혁을”

20여년 동안 부산·경남 지역에서 노숙인과 노동자 등의 진료를 맡아온 정운용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대표가 오는 3월 치러질 대한의사협회(의협) 제42대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정 대표는 1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의협 회장 출마를 선언했다. 의협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다음달 16일부터 제42대 회장 선거 후보자를 접수하고 같은 달 19일 후보자 명단을 발표한다.

정 대표는 “아프면 돈이 없어도 치료는 받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청년 시절부터 가져온 소박한 바람을 실현하고자 인의협과 함께, 동료 의사들과 함께 노력해왔다고 생각한다”며 “의협 회장이 된다면 의협을 민주적인 전문가 단체로 개혁하고 국민에게 존경과 신뢰를 얻어 의사와 국민 모두가 행복할 의료개혁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정 대표는 부산백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후 봉직의를 거쳐 2007년 병원을 열었다. 외과 전문의로 17년간 일했고 2006년부터는 부산·경남 인의협 대표를 맡아왔다. 2003년부터 22년째 부산 노숙인진료소 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정 대표는 노숙인과 이주민, 파업 노동자 등의 진료를 해왔다.

그간 의협 회장은 광역시도 의사회 출신 등 의협에서 주요 직책을 담당했던 인사들이 거쳐갔다. 인의협 소속 의사가 회장 자리에 출사표를 던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 대표는 “이제까지 의협은 전문가 단체보다는 의사들의 권익단체 성격이 너무 강했다. 이래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며 “인의협에서 의협 회장 후보를 내서 의료개혁을 하고 (비슷한 뜻을 가진) 의사들의 폭을 넓혀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는 5년 이상 됐다”고 말했다. 당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의사 사회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결집·전달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는 1차의료와 공공의료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등록제에 기반한 ‘주치의 제도’ 도입과 수가체계 개편, 실손보험 규제 강화와 비대면 진료 금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여성 의사들의 출산·육아 휴직을 보장하는 등 성평등 실현도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의대 정원과 관련해 현 의협 집행부의 의견과 반대로 증원을 주장했다. 정 대표는 “의사의 노동 시간과 강도를 줄여 의사 삶의 질도 개선하고 국민의 건강도 더욱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 의사가 더 필요하다”며 “점차 소멸해가는 지방의료의 최소한의 안전망을 위해서라도 공공병원과 연계된 공공의원, 공공 폴리클리닉을 구축할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등 고공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를 진료하고,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투기 반대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등 사회 각계 문제에도 신경을 써왔다. 정 대표는 “치료만 해주는 게 아니고 국민의 (미래의) 건강까지 보장하는 게 한국 사회에서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동료 의사들의 지지 발언이 이어졌다.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협이 2000년대 이후로 힘을 키우면서 정치적·문화적으로 퇴행을 했다. 누군가 퇴행에 균열을 내지 않으면 의사로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건 너무 슬픈 일”이라며 “의협이 민주적으로 혁신하고 국민을 위해 반걸음이라도 내디딜 수 있길 희망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대 증원 주장을 펼쳐 의료계에 불신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의협 중앙윤리위에 회부된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김 교수는 “의사가 더 좋은 대접 대신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회가 좋은 의료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의협이 국민에게 자기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의료 기술자 집단으로 각인돼선 안 된다”며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진료로 신뢰와 존경을 받아온 모습대로 정운용 후보가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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