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운명으로 체제에 저항한 인간[책과 삶]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
박정수 지음
그린비 | 272쪽 | 1만6800원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지혜로운 영웅이다. 괴물 스핑크스는 도시 테베를 지나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정답을 못 맞히면 잡아먹었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다가,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데, 발의 개수가 많을수록 약한 존재는 무엇인가. 정답은 ‘인간’이었다.
노들장애인야학 철학 교사 박정수는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에서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은 ‘부은 발’이라는 뜻이다. 친부모가 어린 그를 버릴 때 발목에 못을 박아 발이 부어오른 데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박정수는 오이디푸스가 선천적 장애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고대 그리스 사회가 장애를 가진 신생아를 버리는 관습이 있었으며 평생 가는 이름까지 붙여버렸다는 것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사실 인간의 보행 방법에 관한 질문이다. 박정수는 오이디푸스가 평생 자신의 보행 장애를 신경 쓰며 살았기 때문에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친부를 살해하고 친모와 동침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고 스스로 눈을 찌른다. 박정수는 스스로 시각장애인이 되는 오이디푸스가 운명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명애’를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박정수는 그리스 비극에서 장애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체제에 저항하는 인간을 발견한다. 눈먼 오이디푸스를 돌보는 딸 안티고네, ‘난쟁이 꼽추’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신 디오니소스, 발을 다쳐 군대에서 버려진 필록테테스 등에게서 장애의 관점을 끌어낸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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