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으로 증명해낸, 김대중의 진짜배기 말들 [책&생각]

최원형 기자 2024. 1.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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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1924~2009)은 한국 민주주의의 고난과 성공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우리 근현대사에서 몇 안 되는 '성공한' 대통령이다.

김대중 탄생 100년(1월6일)을 맞아 출간된 '김대중의 말'은 50여년 동안 그가 펼친 연설, 강연, 성명, 법정진술, 옥중서신, 인터뷰 등에서 엄선한 말들을 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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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8일 5·18민중항쟁 후 처음으로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아가 유가족을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고 김대중의 모습. 그는 옥고와 추방, 가택연금 등으로 광주에 와볼 수 없던 신세였다. 태학사 제공

김대중의 말
정진백 엮음 l 태학사 l 2만5000원

김대중(1924~2009)은 한국 민주주의의 고난과 성공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우리 근현대사에서 몇 안 되는 ‘성공한’ 대통령이다. 보복이 아닌 ‘화해와 용서’로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을 뛰어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줬고, 실용주의 외교를 펼쳐 분단 뒤 첫 남북정상회담을 여는 등 한반도·동북아 화해와 평화에 기여했다.

김대중 탄생 100년(1월6일)을 맞아 출간된 ‘김대중의 말’은 50여년 동안 그가 펼친 연설, 강연, 성명, 법정진술, 옥중서신, 인터뷰 등에서 엄선한 말들을 묶은 책이다. 정치 입문 전인 1953년 ‘일본이 진실로 한국과의 친선을 원한다면 과거부터 사과하라’는 취지로 쓴 기고문으로 시작하여 고 노무현 대통령 사후 발간된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2009년에 쓴 추천사까지 닿는다. 자신의 실체를 가리기 위한 ‘가짜’ 말들이 난무하는 시기에, 김대중이 자신의 일생을 통해 증명해낸 ‘진짜’ 말들이 더욱 빛난다. 김대중추모사업회장인 정진백이 엮었다.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그가 국가나 민족 같은 추상체보다 ‘국민’, ‘대중’, ‘민중’ 등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다수 구성원들을 한결같이 자신의 뿌리로 삼았다는 점이다.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는 가장 현명합니다.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 유일하게 현명하고,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국민에게서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오판도 패배도 없습니다.”(자전적 에세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993) 당장 눈앞의 상황에 급급하지 않고 늘 역사의 장구한 흐름을 보려 했던 그는 그 약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직 민중만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확신했다. 민주화운동부터 ‘대중 경제’, 통합의 정치력, 한반도 평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상과 실천은 모두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미국 망명 시절, 자택에서 아내 고 이희호 여사와 함께 있는 고 김대중의 모습. 태학사 제공
2000년 6월15일 평양에서 남북공동선언문에 합의한 뒤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태학사 제공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서생적 문제 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 등 김대중의 여러 금언들이 50여년을 관통하며 일관되게 흐르는 것을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1년에 이미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내다보는 등 새삼 그의 혜안에 놀라게 되는 대목도 있다. 신군부의 ‘내란음모’ 조작으로 사형수가 되어 청주교도소에 갇혀 있던 김대중은 수사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제 곧, 텔레비전 세트 같은 기기에서 질문하면 바로 답해 주는 시대가 옵니다. (…) 우리도 그것을 개량할 수 있는 기술을 가져야 해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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