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풀 수 있었던 이유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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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작품은 장애인들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박정수 노들야학 철학 교사가 쓴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는 지난 몇 년 동안 노들야학에서 장애인들에게 한 그리스 비극 강의를 엮은 책이다.
그리스 비극을 장애인들과 함께 읽으면 장애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행한 작업의 결과다.
그리스 비극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을 장애인의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 주인공 오이디푸스의 '보행 장애'가 먼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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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
박정수 지음 l 그린비 l 1만6800원
그리스 비극 작품은 장애인들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박정수 노들야학 철학 교사가 쓴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는 지난 몇 년 동안 노들야학에서 장애인들에게 한 그리스 비극 강의를 엮은 책이다. 그리스 비극을 장애인들과 함께 읽으면 장애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행한 작업의 결과다.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여신도들’, 아이스킬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해 모두 일곱 편의 그리스 비극 작품을 장애인의 눈으로 분석했다.
그리스 비극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을 장애인의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 주인공 오이디푸스의 ‘보행 장애’가 먼저 두드러진다. 오이디푸스(Oedipus)라는 이름부터가 ‘부은’(oide) ‘발’(pus)이라는 뜻이다. ‘부은 발’은 소아마비 환자의 경우에 간혹 나타나는데, 고대 이집트 미라 중에도 곤봉 모양으로 발목뼈가 부풀어오른 것들이 있다. 투탕카멘의 미라도 발목뼈가 곤봉 모양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착안해 지은이는 오이디푸스가 보행 장애를 겪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오이디푸스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가 목동이 구해준 덕에 이웃나라 왕의 아들로 성장하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고 자기를 키워준 나라를 떠난다. 오이디푸스는 도중에 스핑크스를 만난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아침엔 네 발로 걷다가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이 되면 세 발로 걷는데, 발의 개수가 많을수록 약한 존재는 무엇인가?” 이 수수께끼를 그동안 푼 사람이 없었는데, 오이디푸스는 즉각 ‘사람’이라고 답한다. 유년기에는 네 발로 기고, 청장년기에는 두 발로 걷고, 노년에는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이 사람이다. 지은이는 오이디푸스가 이 수수께끼를 쉽게 풀 수 있었던 것이 ‘보행 장애’ 덕이었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매 순간 일상 속에서 몽둥이처럼 부은 발과 보행 장애에 신경쓰며 살아왔을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특별히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스 비극 작품을 이렇게 읽으면 장애에 관해 새로운 눈을 얻게 된다. 장애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운명애’를 익힐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에 더해 이 책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장애인 정책 같은 곁가지 사실도 알려준다. 아네테 민주정은 ‘아두나토이’(무능력자)라고 불린 장애인들에게 장애 원인에 상관없이 매일 2오볼의 돈을 지급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하는 시민에게 준 배심원 수당이 하루 3오볼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기초생활비 정도는 됐다. 리시아스라는 변론가의 법정 변론문을 모은 ‘리시아스 변론집’에는 부정수급자로 고발당한 장애인을 위해 쓴 변론문이 있다. 이 변론문을 통해 평의회가 엄격한 장애 판정 기준에 따라 해마다 장애 심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평의회는 첫째, 생계 노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적 손상이 있는지, 둘째, 연금이 없으면 생계가 불가능할 만큼 가난한지, 셋째, 부양해줄 다른 가족이 없는지를 따졌다. 오늘날 한국의 장애인 복지 서비스 심사 기준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런 장애인 연금 제도는 아테네 민주정에만 있었다고 하는데,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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