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지만 ‘해를 그리지 말라’던 금기가 있었다 [책&생각]

한겨레 2024. 1.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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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그림에 해를 그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어떤 애가 해를 그려서 선생님께 혼이 났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무도 뻔히 있는데 나무는 그려도 되잖아? 알쏭달쏭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고, 친구들이 그림에 해를 그리면 놀라 소문을 전했다.

올 한 해 힘들 때마다 이 그림책을 꺼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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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왔다
전미화 글·그림 l 사계절(2024) 

나는 어렸을 때 그림에 해를 그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어떤 애가 해를 그려서 선생님께 혼이 났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해는 당연히 떠 있기 때문에 그리지 말라고 했단다. 아마 너무 뻔한 것 말고 새로운 것을 그리라는 말씀이었겠지만 그때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나무도 뻔히 있는데 나무는 그려도 되잖아? 알쏭달쏭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고, 친구들이 그림에 해를 그리면 놀라 소문을 전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은 몰래 해를 그렸다. 종이 위쪽 귀퉁이에 햇살을 뜻하는 작대기 몇 개를 그리는 식이었다. 그거라도 있어야 ‘맑은 날씨’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비추는 해를 보고서야 내가 알던 금기가 얼마나 황당한 건지 알았다.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해를 그린다. 크고 절대적이며 따뜻한 존재를 바라는 마음이 그림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해는 날마다 나타나서 우리를 안심시킨다. 해가 뜨고 진다는 사실은 절대적인 우주의 법칙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걸 말해준다. 아침이면 누구나 새로운 해를 만나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적어도 해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줄 것만 같다. 그런데 그림책은 당연해 보이는 것을 의심하는 법이다. 정말로 해는 모두를 비추고 있을까?

‘해가 왔다’의 주인공은 해가 날마다 온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해를 만나지는 못한 아이다. 그의 집은 컴컴하다. 아이는 달한테 기대어 해를 보고 싶다는 소원을 빈다. 소식을 들은 해는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놀라서는 아이를 찾아가고 아이를 통해 사정을 알게 된다. 아이의 작은 집은 높은 아파트들에 둘러싸여 있던 것이다. 그럴 때는 해조차 공평하지 않다. 아이의 집은 어둡고 춥고 외로운 곳이다. 이때 집은 물론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 전체다. 그곳에 해가 든다.

사랑이나 희망을 처음 본 사람은 그걸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모른다. 아이는 해가 더울까 봐 얼음을 가져다주지만 이내 녹아버린다. 떠나는 해를 보내지 않으려는 아이를, 해는 부드럽게 달랜다. “나는 너만의 해가 될 수 없어.” 그리고 아이에게 준비해온 선물, “크지도 뜨겁지도 않은 작은 해”를 준다. 누구나 해를 만날 수 있다거나, 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면 허무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어린이가 손에 쥔 작은 해는 분명한 위안이고 구체적인 지원이다. 아이는 작은 해로 자신을 비추고, 그것을 키워서 동네 동생에게 나누어준다. 비로소 아파트들 사이에 작은 집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드러난다. 집집이 작은 해가 들었다. 드디어 “해가 왔다!”

이 그림책은 184×202㎜의 비교적 작은 판형으로 만들어졌다. 해 그림은 한쪽 면을 가득 채운다. 마치 작가가 어린이한테 해를 만져보라고 하는 것 같다. 2024년을 시작하며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열 보따리였는데, 나도 이 그림책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내 안에 들어온 작은 해 덕분에 다시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겠다. 만나는 이들에게 해를 나누어주고 싶고, 나누어 받고 싶다. 올 한 해 힘들 때마다 이 그림책을 꺼내볼 것 같다.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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