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0년, 인구 감소라는 쓰나미가 전세계 덮친다 [책&생각]
“네트워크화된 지역화로 지속가능성 높여야”
축소되는 세계
인구도, 도시도, 경제도, 미래도, 지금 세계는 모든 것이 축소되고 있다
앨런 말라흐 지음, 김현정 옮김 l 사이 l 2만3000원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2022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한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이 0.78이라는 얘기에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한 말이다. 인종, 성별, 계급 분야의 전문가인 그는 지난해 방영된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에서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 없다”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한국의 저출생 문제는 심각하며, 외국의 전문가들도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구 감소는 한국만의 문제일까. 최근 출간된 ‘축소되는 세계’를 보면 인구 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에서 근무했고 도시계획 전문가인 저자 앨런 말라흐는 이 책에서 전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미 인구 감소 단계에 접어들었고, 앞으로 이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책은 고대 로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인구 변천사를 압축적으로 다룬 뒤,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구 감소 현황을 상세하게 다룬다. 향후 5~10년 이내에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확실시되는 나라로는 타이, 대만, 이탈리아, 레바논, 쿠바 등이 있고, 독일 역시 이민자들이 없다면 인구가 감소할 위기에 처해 있다. 저자는 각종 예측 자료를 근거로 2050년이 되면 전 지구 국가 중 3분의 1인 65개 국가에서 인구 성장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고, 50년 후가 되는 2070년쯤이 전 세계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워낙 심각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보지 못했을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인구 감소 문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감각할 수 있다. 인구 감소가 국내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변화임을 인식하고, 인류사적 차원에서 현시대가 어느 지점에 있을지 조망해볼 수 있다.
위기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면 파도의 높이와 세기 등을 정확히 예측하고 파도를 타고 넘어갈지 아니면 항로를 아예 바꿔야 할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저자는 인구 감소라는 ‘파도’가 사회적·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저자의 설명을 읽다 보면 이 파도는 ‘쓰나미’급 변화이며, 이 위기를 넘기려면 경로를 빨리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인구가 감소되면 고령 인구와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생산가능인구와 아동인구가 줄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 소비는 위축되고 숙련된 노동자가 줄면서 생산성과 혁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개발과 경제활동을 위한 자본 조달도 어려워진다. 공공 세수는 주는데 고령층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 수요는 갈수록 늘어난다. 주택 가치는 하락하게 되고 주택 수요가 감소하면서 빈집이나 버려진 땅이 더 늘어나면서 도시 또한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의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에서는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에 7만채가 넘는 집이 철거를 통해 사라졌다. 산업이 붕괴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만 덩그러니 남아 도시 전체가 텅 비어버린 것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에서는 2018년 기준, 주택이나 아파트 7채 중 1채가 비어 있어 국가적인 위기로 인식될 정도라고 저자는 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경제적 변화는 사람들 간, 도시 간 불평등을 더 심화시킨다. ‘성장’을 통해 파이를 늘려 분배를 하자는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고, 전체적인 파이가 줄면서 세계 각지에서 민족주의 정권과 신파시즘 정권이 등장할 것이라고 책은 전망한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교역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인구 감소라는 ‘쓰나미’급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파도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일단 인정하자고 말한다.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는 인구는 물론이고 경제도 모두 ‘성장’을 기본값으로 여기고 국가 경제 모델이며 기업 전략을 짜왔다. 도시 역시 ‘성장과 번성’을 목표로 조성됐다. “더 많이!”를 외치며 생산과 소비를 해왔다. 그러나 인구 감소 외에도 인류 앞에는 기후 위기라는 변수까지 더해져 ‘위기의 파도’는 그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저자는 “국가적 차원이나 세계적 차원의 성장이 더 이상 인구 감소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경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체 자원을 투자해 현지의 금융, 자연, 인적 자본을 통해 재화, 서비스, 음식, 에너지 상당 부분을 생산하는 ‘지역화’(또는 현지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역화가 잘된 도시나 국가가 인구 감소가 미칠 사회적·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지속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지역화는 완전한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네트워크화된 지역화’를 강조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분산된 에너지 공급과 분산 생산, 재택근무 같은 경제적 구조의 변화, 고령자 친화적인 도시, 네트워크화된 교육 기회와 의료 시스템처럼 사회적 구조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책은 고령화 사회의 충격 여파를 줄이고 교육을 네트워크화한 사례로 요양시설과 유치원을 결합한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그레이스 리빙 센터’를 제시하는데, 국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새해 벽두부터 언론에서는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경보음은 계속 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파이를 늘려 성장하자”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다가올 미래가 불안한 개인부터 ‘인구 절벽’이라는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할 전략과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기업 및 정부 관계자들이 정확한 현실 인식을 위해 참고하면 좋을 책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24년째 민주당원’ 이낙연, ‘신당’ 공언 한 달 만에 탈당 강행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숱한 사람 죽인 죗값이 금고 4년이라니”
- 조태용, ‘수상한 임대료’ 또 나왔다…엑손모빌 이어 호주은행과도
- 태영건설 ‘착공 전 사업장’ 18곳…수분양자 피해 불가피
- 갑옷은 검으로 벨 수 없다…‘고려거란전쟁’, 고증과 CG가 만든 명장면
- 대통령이 ‘셀프 무혐의’ 하라고 있는 자리인가 [아침햇발]
- 40대 된 ‘82년생 김지영’이 묻는다…주부연금은요?
- ‘이태원 특별법’ 9번째 대통령 거부권 가닥…여당 “무소불위” 가세
- [사설] 표 얻겠다고 ‘1일 1선심’, 총선 개입 도를 넘었다
- 이낙연 탈당에 민주당 격앙…“꽃길만 걸어온 분이 당에 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