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속으로 틀어박힌 예술가가 깨달은 것은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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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혼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품 활동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세상과 단절된 채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속세의 삶을 사는 대중이 보기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그저 '독창적인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예술가의 작품은 그저 '독창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온 인생과 분리될 수 없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궁금해하며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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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
2차대전 겪으며 자기 안으로 침잠
불빛으로 세상 밝히겠다는 의지
달팽이
빛을 조각한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
에밀리 휴즈 지음, 윤지원 옮김 l 지양어린이 l 1만7500원
예술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혼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품 활동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세상과 단절된 채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속세의 삶을 사는 대중이 보기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그저 ‘독창적인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1904~1988)도 고독한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달팽이: 빛을 조각한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는 이사무가 화를 내며 전시회를 거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04년 미국에서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사무는 미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의 삶을 살아간다. 특히 2차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자 그는 양쪽 모두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외톨이가 된다. 두 나라 어느 곳에서도 환대를 받지 못했던 이사무가 전시회에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던 이유다.
그는 이후 자신만의 ‘달팽이’ 속으로 들어가 아카리(대
나무 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일본의 조명등)를 만든다. 달팽이 속에서 그는 미국 남서부의 메마른 땅과 히로시마의 폐허 같은 어두운 기억과 함께 어릴 적 느꼈던 어머니의 포근한 품과 자신이 좋아했던 그리스 신화의 낡은 책장들 같은 따듯한 기억을 함께 떠올리며 작품을 만든다.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했던 이사무는 아카리를 완성한 뒤 달팽이 껍질 밖으로 걸어나온다. 아카리를 만들며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이사무는 결국 전시회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예술가의 작품은 그저 ‘독창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온 인생과 분리될 수 없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궁금해하며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책은 이사무의 삶과 예술을 추적해 나가면서 소외된 삶을 살았던 이사무가 실은 아카리의 불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따뜻하게 밝히고 싶어했다는 진실을 알려준다. 아울러 예술가라면 아무리 외톨이라 할지라도 세상과 함께하며 자신의 예술을 더욱 확장해 가기를 원한다는 사실도 함께 일깨워준다.
일본계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2세인 지은이 에밀리 휴즈가 소개한 이사무의 말은 책이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관통한다. “예술가는 혼돈이라는 재료에서 질서를, 세상이라는 재료에서 신화를, 외로움이라는 재료에서 연대감을 창조해야 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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