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학부모 압박에 교사 아동학대 신고한 교장... 교권침해 결론 났지만 교사는 조기 전근
부모 민원에 학교가 먼저 신고
관리자 신고의무 불이행 등 우려
교사는 3개월여 병가 내고 조사
무혐의 났지만 충격 커 전근 신청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교사가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학부모 민원을 받고는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학부모 면담 당일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교장은 현행법상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라 선제 조치를 하지 않으면 학부모가 문제 삼을 것을 우려했다는 게 학교 측 해명이다. 해당 교사는 이로 인해 수개월간 수사를 받은 끝에 혐의를 벗었고 학교 교권보호위원회로부터도 정당한 교육활동이었다고 인정받았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전근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관악구 S초등학교 학년부장 겸 4학년 담임이던 교사 A씨는 맡은 학생들에게 상담 신청을 받았다. 신청서에는 '같은 학년 다른 반 학생(B양)이 카카오톡 프로필에 우리들 얼굴이 나온 사진을 동의 없이 올렸고, 초상권 침해이니 사진을 지워달라고 했지만 거부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날 이 학교 4학년 학생들은 초상권 관련 강사 초빙 교육을 받았다.
A씨는 그날 점심시간에 담임반 교실로 B양을 불러 사실관계를 물었다. 상담을 신청한 학생들이 있는 자리였다. B양은 스마트폰을 꺼내 카톡 프로필 사진을 교사에게 보여줬는데, 학생들이 2학년일 때 담임교사가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A씨는 반 학생들에게 "이걸로 초상권 침해를 주장하는 건 과한 것 같다"고 말하고 B양을 돌려보냈다.
B양은 이후 학교에 결석했고 학부모가 그다음 주에 학교를 방문했다. 학부모는 교장·교감과의 면담에서 "다른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 아이를 조사했다"며 정서학대 피해를 주장하면서 A씨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남은 학기는 병가를 내고 학교에 못 나오도록 하고 2학기에 전근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들어주지 않으면 A씨를 직접 신고하는 등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교장은 그 자리에서 'A교사가 학년부장으로서 생활지도를 한 것이지 정서학대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결국 그날 교감에게 A씨를 117(학교폭력신고센터)에 신고하도록 했다.
학교 측 대응은 아동학대처벌특례법상 교장 등 학교관리자의 신고의무를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학교 측 설명을 종합하면, 학부모의 강경한 태도에 비춰 신고 가능성이 높고 나중에 교장의 신고의무 불이행을 문제 삼을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교장은 A씨를 위해 경찰에 낸 탄원서에서 "학생 간 갈등을 중재하는 교사의 지도였으나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부득이하게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서 절차를 준수한다는 측면임을 117에 밝히고 신고했다"고 밝혔다. 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학부모가 (면담에서) '신고의무자가 아니냐'고 했고, 교육(지원)청 등에 문의했을 때 신고가 필요할 수 있을 거라는 안내도 받아 (교내) 협의를 거쳐 신고한 것"이라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입장은 다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의 일방적 아동학대 민원에 학교 측이 신고해야 한다는 지침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동학대가 아닌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부모가 민원을 제기해도 신고하지 않는 학교들이 있고,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경우 학부모에게 신고를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에는 신고의무자에 대해 '아동학대를 알게 된 경우나 의심이 있는' 경우에 즉시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씨는 이후 병가를 내고 지자체, 경찰 등에서 석 달 넘게 조사를 받았고, 지난해 10월 중순 서울중앙지검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서야 복직했다. 불기소 이유서에는 A씨가 학급 간 갈등을 해결하는 학년부장인 점, 사건 당시 교실에 소수의 학생만 있어 B양을 정신적으로 압박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점 등을 감안했다고 적혔다.
그다음 달 A씨 청구로 열린 학교 교권보호위원회는 학부모가 교장에게 A씨에 대한 인사조치를 요구한 행위 등은 교육활동 침해라고 인정했다. 아울러 학교가 A씨가 요청한 전보 조치를 지원할 것을 의결했다. 아동학대로 신고된 뒤 정신과 치료도 받은 A씨는 일정보다 1년 이르게 비정기 전보를 신청했고 올해 3월 전보가 확정됐다. 결국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의 요구대로 사건이 일단락된 셈이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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