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미세먼지 농도, 4시간 만에 2배 넘게 치솟더라
백령도 대기환경연구소 가보니
지난달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있는 국립환경과학원 대기환경연구소. 중국이나 몽골 등에서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황사와 각종 오염 물질을 감시하는 최전방 ‘전초기지’다. 중국 산둥반도까지 직선거리로 190㎞, 서울까지는 200㎞다. 중국이 오히려 가깝다.
오후 4시쯤 ‘PM10(미세 먼지) 농도 측정기’에 숫자 ‘231′이 찍혔다. 지름 1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이하 먼지의 1시간 평균 농도가 1㎥당 231㎍(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이라는 뜻이다. ‘매우 나쁨’ 수준이다. 오전 7시에는 47㎍으로 ‘좋음’ 수준이었는데 정오쯤 108㎍으로 오르더니 231㎍까지 치솟은 것이다. 하늘이 누렇고 뿌옇게 변했다. 연구소에서 17㎞ 거리인 북한 황해도 해안은 먼지 섞인 해무(海霧) 때문에 윤곽도 보이지 않았다.
연구소 옥상에선 먼지 채집기가 10㎛ 이하 먼지를 빨아들여 측정기로 보내고 있었다. 흡입한 먼지를 손톱만 한 크기로 눌러 만든 시료가 1시간마다 나왔다. 서석준 연구소장은 “흙먼지 입자가 많으면 황토색, 공업단지에서 나온 매연 성분이 많으면 회색이나 검은색을 띤다”고 말했다. ‘블랙 카본(그을음)’ 측정기에는 1㎥당 1163ng(나노그램·10억분의 1g)이 찍혀 있었다. 안준영 연구관은 “맑은 날에는 보통 1㎥당 100~200ng 정도인데 (측정기에는) 중국 공장이나 발전소 등에서 뿜어낸 블랙 카본이 6~12시간쯤 지나 쌓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공기 질을 감시하는 대기환경연구소는 전국에 11곳 있다. 이 중 백령도 연구소가 2008년 가장 먼저 생겼다. 연구소에 빼곡한 장비 50여 대는 미세 먼지뿐 아니라 염화수소와 불화수소, 포름알데히드 등 독성이 강한 대기오염 물질도 측정하고 있다. 안 연구관은 “2003년과 2005년 발생한 중국 충칭 가스 폭발 사고를 계기로 연구소를 만들었고, 2015년 톈진시 화학물질 폭발 사고 이후 장비를 보강했다”며 “해외에서 대형 사고로 생긴 독성·오염 물질이 우리 수도권으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파악해야 대응이 가능하다”고 했다.
백령도 주변에는 공업단지 같은 대규모 오염 배출원이 없어 측정치가 왜곡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박정민 국립환경과학원 과장은 “백령도 대기환경연구소는 국내에서 관측되는 미세 먼지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다”고 했다. 백령도에서 측정한 미세 먼지 농도가 높지 않은데 수도권 측정치가 높았다면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 원인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 과장은 연구소 측정치를 통해 해외 산업 동향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중국발 황산염 측정값은 2014년 5.7㎍/㎥에서 2016년 3㎍/㎥ 등으로 감소세를 보였는데, 중국 공장들이 황 함량이 낮은 연료를 사용했거나 사업장에서 배출 가스를 줄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백령도 연구소가 측정한 초미세 먼지(PM2.5) 농도는 최근 몇 년간 감소세다. 2019년 코로나 사태로 중국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그러나 중국이 작년부터 굴뚝 공장을 다시 돌리고 있고, 겨울철 석탄 난방 등 영향으로 미세 먼지가 다시 우리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12일 미세 먼지 농도는 수도권·강원 영서·충청권·광주·전북·대구·경북에서 오전 한때 ‘나쁨’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보됐다. 9~10일 몰려온 중국발 미세 먼지가 대기 중을 떠돌며 잔류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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