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정당의 위기와 민주주의 미래

유일선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2024. 1.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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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피습 진영 갈등 산물…선거 승리 몰두 정당 왜소화
권력투쟁 집착 정치 양극화, 당 중심 민주정치 복원 절실
유일선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새해 벽두에 부산을 방문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이 발생했다. 이제 우리사회에 이념과 가치의 양극화와 빈부 격차에 따른 계층 양극화에, 진영 간 집단적 열정이 충돌하는 ‘감정의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더해지는 모습이다. 이 사건은 진영 간 ‘정치 양극화’가 공론장을 해체하고 사회를 극명하게 양분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 갈등의 한 형태를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정치 양극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온전히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특정 개인의 전제정(단일 개체가 절대 권력으로 통치하는 정부 형태)을 막기 위해 시민 개인들이 권력을 갖고 스스로 통치하는 정치 체제다. 이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다원성과 이질성에 따른 다양성을 어떻게 타협하고 통합해 사회적 동질성을 확보하느냐가 정치의 요체가 된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법의 지배 원리와 삼권분립제도를 바탕으로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통치 체제로서 정부가 구성된다. 이런 정부 구성의 주요 정치조직체로서 정당은 시민 개인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항상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 선다. 정당은 이런 사회적 갈등을 다루기 위해 시민 개인들의 대의기구인 의회라는 합법적 공간에서 토론과 타협을 통해 법을 제정하고 그것에 기반한 정책실현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룬다. 따라서 민주적 정치과정이 역동적으로 작동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민 개인들의 사회적 요구에 대한 정당 간, 정당과 시민사회 간 공론장이 활성화되고 타협과 협력을 바탕으로 제정된 법 위에 어느 누구도, 어떠한 기관도 군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은 이러한 민주적 정치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지 못했다. 정당이 대통령을 육성하기보다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위로부터 정당을 창출하고 통제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전제군주에 가까운 대통령이 경제·행정관료 체제를 기반으로 산업화를 주도할 때, 야당은 배제되고 집권 여당은 이런 체제의 하위조직으로 ‘통법부’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당들은 오직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외부 인재영입쇼’를 펼치면서 스스로 왜소화를 자처했다. 따라서 선거는 정당 중심이 아닌 캠프 중심으로 치러졌다. 이런 정치과정은 여러 분야의 명사들을 모아 기여도에 따라 공직이나 권력을 배분하는 이권 관계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는 외부영입을 통해 정치경험이 거의 없는 대통령을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국가에 대한 자율적 비판과 저항의 역할을 수행하던 시민운동가들이 인재영입 창구를 통해 대거 권력관계에 편입되면서, 정당을 뛰어넘어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통합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공론장이 황폐화되었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파당적 재편은 대부분의 지식인 그룹이 권력에 포섭되는 과정을 통해 대학과 지식사회도 극명하게 분화되었다. 이러한 정치 환경에서 정당은 사회적 통합을 이끌 수 있는 정치인재를 교육하고 양성할 수 있는 기능을 상실했다. 인물 중심의 정당들이 명멸할 뿐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통합하는 정치과정은 소멸되고 오직 권력투쟁만이 공고해지면서 정치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그러면 이런 정치과정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최장집 교수에 의하면 첫째, 법의 지배가 무너진다. 대통령의 하위구조로 편입된 여당이 제안한 법은 야당이 거부하고 야당이 입법한 법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의회 권력이 무력화되어 삼권분립 체제가 위협을 받는다. 현재 대통령은 법을 우회한 시행령을 통해 권력을 확장하여 야당을 배제하고 여당을 무력화하면서 자기 이념 중심으로 사회 전체를 획일화하려 하고 국민은 그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둘째, 선거의 승자로서 여당과 패자로서 야당 간 타협과 협력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런 격렬한 여야 갈등 상황은 정치과정 전체를 상시적인 선거 캠페인 상황으로 전환시킨다. 평상시에도 ‘캠페인 정부’는 선거 캠페인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치를 이끌어 국가나 정부 영역은 물론 시민사회 전체가 과도한 정치화에 매몰되면서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셋째, 사회적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여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한국사회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문제, 빈부격차와 지역격차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 문제와 적대적 국제환경 대응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분출되고 있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레토릭만 난무할 뿐이다. 새해에는 권력의 원천인 시민 개인들의 책임 있는 결단을 통해 타협과 협력을 이끄는 정당들이 중심이 되는 민주적 정치과정의 복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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