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의 도시이야기] 부산 영도, 낭트의 낭트 섬을 보자
20세기 말의 낭트(Nantes) 섬과 21세기의 부산 영도는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닮았다. 도시 속의 큰 섬, 조선업 발상지, 산업도시, 쇠퇴도시, 인구축소도시 등. 그랬던 낭트가 프랑스에서 최고로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
축소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가는 지난 4일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여러 조치를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전국 89개 자치단체 내 주택(1채)을 신규 취득하는 경우 1주택자로 간주하는 정책이다. 물론 영도(구)도 89곳에 포함됐다.
1760년 ‘뒤비종(Dubigeon) 조선소’가 낭트 섬에 문을 연 후 낭트는 대서양 서부 연안의 조선 중심지로 발전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통조림과 비스킷을 생산하는 식품가공 공장과 조선 관련 제철소가 들어서며 낭트의 산업화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밀어닥친 탈산업화 현상은 낭트를 쇠락의 길로 밀어 넣었다. 뒤비종 조선소는 합병과 통합을 거듭하다 1987년 폐쇄되고 말았다.
당시 낭트의 대안은 섬 내 폐산업시설을 철거한 후 다국적 부동산투자회사들을 끌어들여 대규모 재개발을 시행하는 것이었다. 그때 퇴직노동자들이 반발했다. 낭트 섬의 조선산업의 기억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그들은 낭트선박건조역사협회를 설립했다. 이것이 낭트 섬의 미래를 바꾸게 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1989년 장마르크 애로(Jean-Marc Ayrault) 시장의 등장도 낭트 재탄생의 시금석이 되었다. 그는 2012년까지 4선을 하며 낭트를 환골탈태시켰다. 낭트 섬과 관련된 그의 특별 정책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전 시장의 추진사업 중 시민 선호 사업을 재추진하는 것이었다. 대표 사업이 전차 도입과 뒤비종 조선소의 활용이었다. 둘째는 낭트 섬의 도시재생 지침을 제도화한 것이었다. 장소 기억과 유산 가치를 고려한 재생, 루아르강과 연계된 시민 활동 촉진,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 구축, 섬 전체 기능의 조화로운 복합, 통일성을 기조로 한 유연한 변화 추구 등.
세 번째는 낭트 섬 재생을 위한 실행 주체의 확보였다. 공공개발과 정비에서 주택 및 상업지구 개발에 이르는 전 사업을 총괄하는 광역도시정비공사(SAMOA)를 2003년 출범시켰다. 첫 사업이 법원 청사를 낭트 섬으로 이전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청사와 내륙 간 보행전용교를 건설해 연안을 보행자 천국으로 만들었다. SAMOA는 조선소 크레인들을 보존하여 낭트의 랜드마크로 삼게 하고, 작업장 홀을 ‘섬기계전시관’으로 재탄생시키며 낭트 섬을 혁신의 재생지대로 나아가게 했다.
섬기계전시관의 첫 작품! 그것은 52명을 탑승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 코끼리(Grand Elephant)’였다. 12미터 높이의 거대 코끼리가 2007년에 등장하며 낭트 섬은 일시에 명소가 되어 버렸다. 2011년에는 100만 방문 기록이 세워졌다. 섬을 이리저리 다니며 물을 뿜는 코끼리 위에서의 낭트 섬 구경은 여느 테마파크에서의 흥분을 넘어서고도 남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움직이는 기계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낭트는 해저2만리, 지구 속 여행,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으로 유명한 쥘 베르느(Jules Verne)의 고향이었다. 19세기 소설 속에서 비행기 잠수함 우주선 등을 상상했던 사람이 쥘 베르느였다. 그렇다. 19세기에 창안된 그의 상상을 21세기의 낭트 섬에 녹여 놓은 것이었다.
낭트 섬에는 유럽연합의 지원으로 탄생한 ‘창조지구(Quaritier de la Creation)’가 있다. 그 덕에 죽어 있던 폐산업시설과 부지들이 새 생명을 얻고 날개를 달았다. 폐공장이 대학 캠퍼스로 변신하고, 다양한 스타트업과 지역 언론·방송사들이 폐시설 부지에 자리 잡았다. 수변 창고들은 새로운 수요로 다시 채워졌다. 인근에는 낭트 섬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계층을 위한 실험 주택들이 들어섰고, 대형 요양원과 공유 개념의 식당과 목욕탕도 세워졌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산업 기억과 흔적에 대한 존중은 낭트 섬 재생의 지향점이 되었다.
낭트 섬의 여건은 지금의 영도와 닮아도 너무 닮아있다. 뭍에서 불과 200미터 떨어진 섬, 연안을 따라 형성된 낡은 조선소들과 작은 공장들, 신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영블루벨트라 불리는 물류산업시설 부지들, 올라가는 연령대와 줄어드는 인구, 그리고 200개가 넘는 커피점과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새 시대에 대한 희망과 욕망들. 20여 년 전 낭트 섬이 걸었던 그 길을 걸어보는 것, 아니 영도만의 창조적인 새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에너지와 잠재력은 충분해 보인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영도 앞에서, 탈산업화에 맞섰던 낭트 섬의 비결 두 가지를 기억하려 한다. 하나는 옛 산업의 기술과 남겨진 것에 대한 전략적 선택을 통한 현재의 필요성, 즉 재산업화 전략이다. 다음은 조선소 부지를 넘어 낭트 섬 전체, 그리고 강과 바다와 연계된 낭트 광역권을 하나로 묶었던 미래 성장전략이다. 20여 년 전 낭트 섬에 밀려왔던 새 시대를 향한 거대한 물결이 영도에도 넘어 들어오길 깊숙이 스며들어 오길.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