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77] 체제를 위협하는 유민
아름다운 봄날 밤에 흥취가 오르면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는 말을 절로 내뱉을 법하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이렇게 읊었다. “촛불 들고 밤에 노닐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秉燭夜遊, 良有以也)”고 말이다.
유(遊)는 ‘노닐다’라는 뜻이 으뜸이다. 그로부터 놀이, 나다니기 등의 뜻을 더 얻는다. 예전 군사 교육을 받을 때 교관이 유격(遊擊)이라는 과목을 설명하면서 “놀면서 때리다”라는 풀이를 내놨을 때 퍽 당황한 적이 있다. 유희(遊戲)라는 말을 우선 떠올려 그렇게 풀었을 법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떠돌다’라고 해석해야 정답이겠다. 정규군이 아닌 개별적 무장 병력들이 이리저리 빈틈을 파고들어 공격을 가하는 일이 ‘유격’의 원래 뜻이다.
체제의 틀에서 튕겨져 나간 사람들이 무척 많았던 곳이 옛 중국이다. 그들을 대개는 유민(遊民)이라고 적었다. 왕조의 견고한 통치 복판과 그 주변은 보통 조야(朝野)라고 했는데, 그에 몸담지 못해 정처(定處)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다. 뚜렷한 직업 없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강호(江湖) 언저리를 이리저리 오가는 집단이다. 중국인이 만든 무술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길거리의 약사(藥師), 술사(術士), 거지와 연예인, 시정잡배 등이 다 그 범주에 들어간다.
지금 형편으로 보자면 다니던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구걸하는 이들이다. 정도가 더 심해지면 깨지고 몰락한 파락호(破落戶), 제 호적을 상실하고 떠도는 망명(亡命), 어두운 사회에 몸을 담는 무뢰한(無賴漢)과 유맹(流氓)으로 이어진다.
학술적 정의는 아니지만, 위의 ‘유민’이 더 집단화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 유민(流民)이다. 중국의 통일 왕조는 이들의 대거 출현으로 명운을 마감한 사례가 많았다. 요즘 대량 실업으로 길거리를 떠도는 ‘예비 유민’들이 부쩍 늘어난다. 중국 공산당 체제의 불안정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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