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의사 선생님, 정치 눈치 보지 마세요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2024. 1.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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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대표 피습, 서울대 의사가 아무리 설명해도
응급이면 부산대, 아니라면 헬기는 타지 말았어야
비전문적·비윤리적 정치인과 타협한 슬픈 자화상
정치 액세서리 된 의사들, 소중한 무형 자산 잃어
후진 정치가 다른 전문 분야까지 수준 끌어내려
일러스트=이철원

1981년 괴한의 총격을 받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조지워싱턴대 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진에게 “여러분이 공화당 지지자였으면 좋겠네요”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경호원들로 둘러싸여 잔뜩 긴장해 있던 의사들은 대통령의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중 민주당 지지자인 한 의사가 “오늘 우리는 모두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답해 레이건을 안심시켰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정치인이야 의사의 당적이 궁금할 수 있지만, 의사는 환자의 당적이 문제 되면 안 된다. 당적뿐일까. 의사에게는 국경도 없고, 적군도 치료하는 게 의사의 사명이다. 전쟁 중에도 의료 시설은 국제인도주의법에 따라 보호받는다. 의사에 대한 최초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서사시 ‘일리아드’에는 트로이 전쟁에서 파리스 왕자의 화살을 어깨에 맞은 그리스의 치료 영웅 마카온에 대해 크레타의 왕으로 출정한 이도메네우스가 이렇게 말한 구절이 나온다. “의사는 화살을 잘라내고 진통제를 뿌려주기 때문에 만인(萬人)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 군의관 한 명이 군사 만 명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을 낫게 하는 전문성에 있다. 여기에 히포크라테스가 강조한 직업의 윤리성이 보태져 의사라는 직업은 중요한 전문직의 하나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런가, 병원에 가서 아픈 곳을 치료하거나 생명 연장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사의 전문성에 감탄하며 감사한다. 의사는 환자 상태를 진단하고 최적 시기에 최선의 처방을 내리고, 최고의 정확성으로 회복을 예견하고 도와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환자나 그 가족은 몰라도 의사는 안다. 병이 얼마나 깊고 얕은지, 또 치료와 회복을 위해 노력과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

아쉽게도 지난 2일 부산에서 발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 언저리 의사들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만 명 몫을 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의 부속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충격적 정치 테러 사건이 열두 갈래로 진화하며 양산하는 각종 이슈 중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가장 비전문적이고 비윤리적인 집단인 정치인들이 고도의 전문성과 윤리성이 필요한 전문직과 타협하며 그려내는 슬픈 자화상이었다. 각자 영역이 엄연하고 존중받아야 할 현대사회의 노동 분화가 무시되고, 문화가 역류하며, 보편적 응급 의료 체계가 헝클어지는 딱한 현장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재명 대표의 부상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의사만 아는 이 대표의 상태에 의사들이 입 다물고 있으니 알 길이 없다. 개인 정보를 발설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에 맞는 의학적 소견으로 치료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지하다시피 응급 상황이었다면 부산대 병원에서 수술받는 게 맞고, 응급이 아니라면 닥터 헬기를 타고 서울로 올 필요가 없었다. ‘1cm 열상’이든 ‘1.4cm 자상’이든, 그게 3차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일주일 넘게 입원할 부상인지도 의문이다. 지역 의료계를 무시했다며 전국의 병원과 의사회가 성명을 내고, 시민 단체가 수술 집도의 등을 경찰에 고발하는 건 시민들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는 증거다.

사고 초기 당에서 브리핑을 하다가 민주당 인재 영입 케이스인 의사가 나와 한 것도 이상하고, 서울대 이식혈관내과 의사가 “내경정맥이 절단된 상태였고, 혈관 손상이 보여 응급 수술이 필요했다”며 의학 용어를 동원해 설명했지만, 부산에서 이송해 온 정황을 이해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튼 서울과 지방 병원들을 시끄럽게 하며 이 대표는 치료를 받았지만, 정치의 액세서리가 된 의사들은 소중한 무형 자산을 잃었다.

정치가 군림하는 것이 비단 의료계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만난 한 과학계 인사는 연구-개발 예산이 갑자기 삭감되어 겪은 난감한 상황을 들려주었다. 과기부 정책 과제 2년 차에 들어가는 그의 예산이 절반 이상이 깎여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같은 주제로 더 많은 연구비를 배정받은 신규 과제가 발표되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주무관의 부주의거나, 예산을 배정하는 분야에 대한 무신경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정이라는 것이다. 대개 한 분야 전문가는 다른 분야 전문가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가 전문가를 중시하지 않는 것은 전문성을 알아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불행은 정치 자체의 후진성에 그치지 않고 그 후진성이 사회 각 분야를 구석구석 흐르며 자기들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 있다.

정치와 전문성의 잘못된 만남을 ‘테크노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그 둘이 편의를 주고받으며 진실을 왜곡할 때 사회는 이상한 곳으로 흘러간다. 과거 우리 조상도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지식인을 꼬집어 ‘곡학아세’라고 경고했다. 좋은 정치는 사람들이 저마다 전문성과 소질을 펼치며 살 수 있도록 해준다. 각자의 지식과 기술을 갖고 정치와 상관없이 살 수 있으면 그럭저럭 살만한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정치를 의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 과잉 사회는 살기 불편하고 힘들다.

지난 2일, 피습 사건을 둘러싸고 부산과 서울에서 누가 무슨 결정을 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날, 병원과 정당 틈에서 일부 의사가 수년간 힘든 수련을 거쳐 이룬 자신의 전문성을 정치 아래 두는 타협을 했다는 사실이다. 결과는 참담하다. 벌써부터 소셜미디어에 ‘2024년도 신설학과 서울대학교 정치의학과’ 패러디 포스터가 떠다니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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