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12] ‘때문’은 외로울 수 없다
한겨울 일요일 밤은 유독 쓸쓸하다. 가게들도 일찌거니 닫아 장막 같은 큰길. 지나는 이 없는 건널목 신호등만 외롭게 끔벅거린다. 눈 내려 얼어붙은 골목길이 반드르르한데. 대낮 같으면 미끄럼 한번 지쳐 보련만, 고양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으니 되레 머쓱하다. 게다가 자빠지기라도 해 봐. 부질없는 생각이 꿈틀대 곱다시 집에 들어갔다.
체면 덕분이었을까, 때문이었을까. ‘덕분’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이니, 무사 귀가를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 ‘때문’은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이므로, 무사 귀가의 단순한 바탕이나 조건이라 하겠다. 아무튼 괜찮은 일에는 ‘덕분’ ‘때문’ 둘 다 쓸 수 있는데, 안 좋은 일은 다르다. ‘눈 때문에 지각했다’ 하지 ‘눈 덕분에 지각했다’ 하지 않는다. 못마땅한 상황에는 ‘덕분’ 제쳐 놓고 ‘때문’만 쓰니까.
두 낱말 쓰임새가 다른 점이 또 있다. ‘덕분에 오늘 즐거웠어.’ ‘당신 때문에 오늘 망쳤어.’ 덕분 앞에는 ‘당신’이 없어도 말이 되지만, 때문 앞에는 ‘당신’이 꼭 있어야 한다. 때문은 다른 말의 꾸밈을 받아야만 쓸 수 있는 의존명사라서 그렇다. 대중매체에서 종종 수식어 없이 ‘때문에’로 시작하는 문장은 바로잡으면 좋겠다.
쓰는 방식이 ‘때문’과 같은 말로 ‘나름’ ‘뿐’이 있다. ‘나름의 논리를 내세운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별생각 없이 흔히 쓰고 보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 ‘나름’ 역시 의존명사여서, 앞에서 다른 말이 꾸며줘야 한다. ‘그 나름의’ ‘자기 나름대로’처럼. ‘뿐만 아니라’도 ‘그럴 뿐만 아니라’ ‘이뿐만 아니라’처럼 써야 옳다. 다만 ‘이뿐’의 ‘뿐’은 조사라서 의존명사(’그럴 뿐’의 ‘뿐’)와 달리 붙여 쓴다.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 설핏 들려던 잠이 달아나 버렸다. 달구경이나 해볼까. 구름 때문인지 보이질 않는다. 아차, 그믐이 다 됐는데 오밤중에 보일 리가. 덕분에 속담 하나 새겼다. ‘새벽달 보자고 초저녁부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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