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비판에 성역 없어… 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 더 날카롭게 비판해야

정리/김정형 기자 2024. 1.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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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1월 정례 회의
8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에서 열린 독자권익위원회. 왼쪽부터 박상욱 위원, 김도연 위원장, 김태수·금현섭 위원, 조중식 부국장. 오른쪽부터 장부승·김별아·김재련·정윤혁 위원. /박상훈 기자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8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별아(소설가), 김태수(변호사),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권력 비판]

-최근 조선일보 사설 및 칼럼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두드러진 느낌이다. <[社說] 총선 정략인 대통령 부인 특검, 그래도 국민 찬성이 높은 이유>(12월 29일 자 오피니언면)는 민주당이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을 단독 처리했는데, 총선을 앞두고 말도 되지 않는 정략적 특검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특검을 찬성하는 국민이 70%에 달하는 게 무엇을 말하는 건지 잘 짚어주었다. <[경제포커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장관의 비애>(12월 27일 자 오피니언면)는 공매도 금지 같은 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등 정치권에 휘둘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 실태를 지적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행태다. 보수 언론 시각에서의 보수 정권 비판은 정부·여당에 보다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취임 석달만에 옷 벗는 방문규 산업장관>(12월 18일 자 A5면) 기사는 방 장관의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취임 3개월 만에 장관직을 내려놓는 당사자와 이런 결단을 한 대통령실의 안이한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지 않아 아쉬웠다. 혹독한 청문회 절차를 거쳐 취임한 장관을 입법부 진출을 위해 정부 스스로 교체 카드로 사용한 것은 삼권분립 원칙 훼손이라고 비판해야 한다.

-<가상으로 볼 수만은 없는 ‘서울 테러’ 동영상이스라엘 대사관 “우리가 겪은 일, 한국도 겪을 수 있습니다”>(12월 29일 자 A6면)는 한국에서도 테러 가능성이 있음을 주지시키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영상에 대해 외교부가 항의하자 삭제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기사는 국내의 안보 불감증을 일깨우는 효과가 있다고 마무리하고, 제목도 이스라엘 대사관의 외교적 결례를 지적하기보다 ‘서울 테러’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뽑았다. 국내 안보 상황까지 엮어 영상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과해 보인다.

[민생]

-<”오늘도 허탕” 새벽 칼바람에 운다>(12월 23일 자 A1·8면)는 최근 건설 경기 한파 속에서 새벽 인력 시장에서도 일거리 찾기가 어려운 취약 집단의 현실을 현장감 있게 잘 보여주었다. 경기적 요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와 젊은 근로자 선호로 건설 일용직 시장이 더욱 좁아진다는 내용도 눈길을 끌었다. 인력 사무소에 늘어선 일용직 노동자들의 사진은 백 마디 말을 대신하는 고단한 민생 현장을 잘 포착했다.

-<고립·은둔 청년 54만명... 사회 손실 年 7조>(12월 14일 자 A12면)는 고립·은둔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책 마련에 대한 정책적·사회적 노력을 촉구하는 기사다. 하지만 제목에서 고립·은둔 청년 규모가 크다는 것과 함께 그 영향을 경제적인 비용으로 제시한 것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이들이 일을 안 해 생긴 손실과 복지 비용으로 추산된 비용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이들이 사회의 ‘짐’ 혹은 ‘부담’이라는 시각을 은연중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 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 운동이나 각 지자체의 노력과 그 성과를 소개하지 않아 아쉬웠다.

-지난 연말과 연초 경기 고양시와 양주시에서 혼자 다방을 운영하는 60대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의자가 고양에서 첫 번째 범죄를 저질렀을 당시 경찰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지만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은 추가 범행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긴급 수배를 하면서도 얼굴 사진은 공개했지만, 익명을 고집했다. 22년 형기를 살고 나온 흉악범의 추가 범행이 추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익명을 고집하는 것은 경찰의 직무유기라고 지적·비판해야 한다.

[낙태]

-<임신 36주도 2000만원에 낙태... 그런데 처벌할 법이 없다>(12월 22일 자 A12면)는 낙태죄 폐지 후 입법 공백이 4년인데, 아직도 태아의 생명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2019년 낙태를 모두 처벌하는 것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 22주’를 낙태 허용의 상한선으로 잡고 보완 입법을 요구했으나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입법 시한이 정해져 있는데도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다. 이 때문에 낙태 상한 기한을 넘긴 태아의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고, 임부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국회의원에게 있는데, 법이 없어서 처벌을 못 하는 것처럼 ‘처벌할 법이 없다’고 제목을 단 것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2028년도부터 시행되는 수능 시험에서 미적분Ⅱ 과목이 제외된 것에 대해 상반되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이공계 대학교수들이 걱정하듯이 수능에서 미적분Ⅱ가 사라지면 <달 탐사도 AI도 자율주행도 못해>(12월 30일 자 A5면), <[기자의 시각] 이공계 대학 ‘5년제’ 되나>(1월 2일 자 A34면) 등의 우려는 과장된 것이다. 교육부가 주장하는 ‘사교육 감소’ 역시 허망한 기대임을 모두 알고 있다. 수학을 하는 이유는 오랜 시간 깊이 생각해 정답을 찾았을 때 희열을 맛보는 것을 연습시키는 것이다. 창의성은 이런 과정을 거쳐 증진된다. 그러나 5분 이상 생각해야 하는 문제를 오지선다로 아무것이나 찍고 넘어가는 것이 현재 수능 시험이다. 획일적 수능이 지닌 근본 문제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萬物相] AI에 윤리 가르치기>(1월 3일 자 A34면)에서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MIT의 자율주행차 트롤리 설문 실험을 소개했다. 해당 실험은 자율주행차가 노인 보행자와 청년 보행자 중 한 명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데, 아시아 응답자는 대체로 청년을, 서구는 노인을 구한다고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러나 실제 연구 결과는 반대로, 아시아는 노인의 생명을, 서구는 청년의 생명을 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칼럼에서 반대로 소개한 것이다.

[인력 수입]

-<이젠 호텔 청소도 동남아 아줌마가>(12월 30일 자 A12면)는 비숙련 외국인에게도 E-9(비전문 취업 비자)를 발급해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호텔과 콘도 등에서 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제목에 ‘동남아 아줌마’라고 했는데, 기사 어디에도 ‘여자’ ‘동남아’ ‘아줌마’로 제한한다는 내용은 없다. 비숙련 노동은 동남아 외국인 전유물이라는 불필요한 편견, 호텔 청소는 여성 특히 중년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성(性) 역할 관련 편견을 강화시키는 불필요한 수식어로 보인다. <이젠 호텔 청소도 비숙련 외국인이 취업하는 게 가능하다> 정도로 제목을 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소셜미디어에 의해 거짓과 가짜 뉴스가 양산되는 사회에서 조선일보는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기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조선일보는 지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나. AI를 활용해 그런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가 디지털 시대에 언론의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준비하는 많은 혁신으로 언론의 지표가 되기 바란다. 산업 문명 시대 신문의 역할은 여기저기서 나오는 가짜 뉴스 같은 것을 정리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문에 실리는 게 ‘진실’이라고 믿고 신문을 보기 시작했는데, 요즘 들어 정론지의 그런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빚내 집 샀는데 영끌족 42%가 손해>(1월 4일 자 A1·8면), <빚 갚는데 월 175만원 2030에 날아든 ‘영끌 청구서’>(1월 6일 자 A8면)는 2030에서 영끌족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영끌족이 집중된 서울 노원구와 중랑구, 강서구, 관악구의 대표 단지에서 1개 동(棟)씩 총 420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해 투자 실태와 현황을 분석한 것이 돋보였다. 청년 문제와 가계 부채 문제가 결합된 문제들이 어디에 기원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속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카드빚 돌려막기 ‘9조’ 역대 최대>(12월 25일 자 A1·14면) 역시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인 가계 부채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다루었다.

-<전기차 전환의 성장통, 기계과 대 컴공과 충돌>(12월 29일 자 B1면)은 미래 차 개발과 관련해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의 주류인 기계공학 엔지니어들과 떠오르는 신진 세력인 컴퓨터공학과 출신들 사이에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충돌에 대한 참신한 접근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美 대선]

-미국 대선 기사가 많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거의 예외 없이 트럼프 일색인 것 같다.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바이든 현 대통령도 있고, 공화당 후보가 아직 정해지기 훨씬 전이다. 앞으로 미국 대선이 예비 경선 등으로 본격 시작될 텐데, 트럼프 행적을 따라가는 것 이상의 상당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거의 새로운 내용이 없는 기사를 계속 내보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조선인 40명 살해”... 관동대지진 학살 日 문서 또 발견>(12월 26일 자 A8면)이 실렸는데, 제목을 보면 마치 조선인 40명을 살해한 무슨 계획에 대한 문건이 나온 것처럼 읽힐 수 있다. 이번 문서에서 밝혀진 학살은 일본 경찰이 조선인 200여 명을 다른 지역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조선인 40여 명이 살기를 품은 군중에게 전원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지면에 <[기자수첩] 日에 사과 요구도 않는 정부 ‘학살 100년’ 올해마저 못 하면 기회 사라진다>는 우리 정부가 일본에 적극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는데, 국제법상 외국에서 우리 국민이 범죄 피해 대상이 되면 우리 정부는 해당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범죄를 사주·조장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민족주의 또는 한일 관계 틀보다는 외국인 혐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한일 간 시민 사회 공동 대응 및 국제 네트워크 구성의 관점에서 유리할 것이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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