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진짜 새로운 얼굴

김지원 기자 2024. 1.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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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3개월 앞둔 요즘, 매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여론조사다.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여야가 앞다퉈 인재 영입에 뛰어들긴 했지만, 이목을 끌 만큼 혁신적인 인물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고향에선 초등학생 때부터 사거리에서 유세하던 전직 의원이 또 나온다고 한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은 시작도 하기 전인데 주위에선 “벌써 피로하다”는 말들이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유럽에선 새로운 얼굴들이 한 나라의 수장으로, 정계의 거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과거엔 ‘2등 시민’으로 정계에 발 들이지 못했던 소수자들이다. 이민자 출신이 대표적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인도계 이민 가정 출신이다. 헤일리 전 대사는 지난해 2월 대선 출마 연설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인도 이민자들의 딸”이라는 말로 입을 떼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에선 성소수자 정치인이 ‘수퍼 루키’로 떠오르고 있다. 9일 프랑스의 새 총리로 지명된 가브리엘 아탈 교육부 장관은 커밍아웃한 게이다. 독일 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공동 대표이자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는 알리스 바이델 대표도 여성과 결혼해 두 아들을 키우는 레즈비언이다.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의 당수지만, 그는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만큼이나 독일에 중요한 존재”라고 말한다.

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이주민 출신 1호 국회의원이었던 이자스민 전 의원은 임기 내내 “매매혼으로 팔려왔냐” “왜 외국인에게 혈세로 월급을 줘야 하냐” 등의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그가 정계에 첫발을 들인 지 12년이 지났지만, 다문화 가정에서 나고 자란 지역구 국회의원은 여태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성소수자들은 더한 상황에 처해있다. 대선 TV 토론에서 ‘동성애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질문을 주고받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그 어떤 선진국에서도 대통령 후보들이 이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성소수자를 ‘나를 뽑아줄 유권자’, 즉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상주하는 15세 이상 이민자 수는 143만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절벽에서 국가를 유지하려면 더 많은 이민자 유입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성적 지향은 개인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이런 변화를 기민하게 받아들일 의지도, 능력도 부족해 보인다. 여전히 호남이니 영남이니, ‘친명’인지 ‘비명’인지로 다투는 것을 보면 2024년에 이렇게 진부해도 되나 싶다.

마하트마 간디는 “우리 문명의 아름다움은 다양성 속에서 통합을 이루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했다. 정치가 시민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 짓고 문턱을 높이는 한,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꽃을 점점 시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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