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감옥에서 떠올린 한국, 한국인[알파고 시나씨 한국 블로그]
보통 이런 경우에 처하면 일반 시민들은 수사 당국에 “우리 대사관과 통화하고 싶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굳이 대사관에 있는 직원들을 필자의 일 때문에 바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연락을 받지 못한 필자의 아내가 주레바논 대한민국 대사관에 연락했고, 덕분에 천천히 흐르던 수사가 급물살을 타서 나흘 만에 출소할 수 있었다. 이 나흘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레바논이 나를 이스라엘 간첩으로 오인한 건 단순히 예민한 시기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 같았다. 중동의 얼굴을 한 사람이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면 의심을 사기 쉽다. 교도소에서 사람들은 필자를 ‘아부 하룬(하룬이 아빠)’ 아니면 ‘쿠리(한국인)’라고 불렀다. 필자는 ‘내가 아무리 한국인이라 해도 의미가 없네. 한국에서는 내가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꼈는데 외국에 나오니 그렇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보통 이렇게 감옥에 끌려 가면 오해였다고 해도 일찍 나와봐야 일주일이나 열흘 안에 나올 수 있다는데, 필자는 대사관 덕분에 일찍 석방될 수 있었다. 풀려나자마자 대사관 직원들이 연락해서 도와주고, 필자가 안전하게 레바논에서 나갈 때까지 동행했다. 본인 때문에 직원분들이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못해 엄청 미안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고맙고 안심이 되었다.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 레바논 공항에서 두바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귀화 시험을 보던 날이 생각났다. 사실 필자는 1차 면접에서 떨어진 드문 케이스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란 생각에 자만심이 생겨서 귀화 시험을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아내는 내가 떨어지고 나니 “잘되었다. 통과하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선서해야 하는데, 아직 그 말에 충분히 공감하지도 않으면서 거짓 맹세를 할 뻔하지 않았냐”고 했다. 사실이었다. 필자는 귀화 시험 면접을 통과하고 한국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이런 선서를 하는 것을 보고 좀 의아했다. 진짜일까? 진심으로 다짐하는 걸까? 하지만 귀화 시험에서 한 번 떨어지고 난 뒤 한국 독립과 관련된 영화를 보고 과거 한국인들이 이 나라를 얼마나 힘들게 세웠는지 공부하면서 그 선서에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었다.
그 덕일까. 6개월 뒤 다시 면접을 보고 아주 신속하게 시험을 통과해 한국 국민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나 진짜 한국인이 되었나?’ 그러나 그 의심들이 이번 레바논 사태로 싹 사라졌다. 필자는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에서 돈을 벌고, 필자가 버는 돈으로 세금을 낸다. 그 세금으로 나라는 살림을 운용하고, 필자 같은 국민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와서 구해준다. 이런 나라에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 충성 선서는 그렇게 핏줄과 관계없이 우러나는 것이다.
요즘 이민청 개설 때문에 이주민과 관련한 많은 토론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주로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 즉 저출산 문제나 노동 시간 같은 것이 주된 주제다. 귀화, 귀화인과 관련한 이야기는 없다. 이민 와서 온전한 한국인이 된 귀화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좀 토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러한 개인 경험을 공유한다.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파이브스톤즈이엔티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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