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색채의 무한변주… ‘꿈꾸는 자’의 자유를 담다
김신성 2024. 1. 11. 21:40
신종식 개인전 ‘저 너머 시간으로의 여행’
주황·파랑·노랑·고동… 원색의 힘찬 몸짓
하늘과 대지·기둥 등 온갖 사물의 흔적
고대 도시·화석의 이미지 빌려 재현해
잃어버린 세계 발굴되어 조명 받는 듯
색의 향연 속 재미있는 기호 어우러져
경직된 삶·제도 벗어나 해방감 ‘만끽’
주황·파랑·노랑·고동… 원색의 힘찬 몸짓
하늘과 대지·기둥 등 온갖 사물의 흔적
고대 도시·화석의 이미지 빌려 재현해
잃어버린 세계 발굴되어 조명 받는 듯
색의 향연 속 재미있는 기호 어우러져
경직된 삶·제도 벗어나 해방감 ‘만끽’
“자신의 작업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강렬한 색채들을 나란히 배치할 수 있다.”
괴테가 남긴 말이다. 이는 작가 신종식의 색채에 들어맞는다. 사실 주황색을 잘 쓰는 작가는 그리 흔치 않다. 주변의 색을 제압하고 유독 두드러져 보이거나 자칫 촌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신종식의 그림에서 주황은 물론 파랑, 노랑, 연두, 고동 등은 각기 또렷한 윤곽선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힘차게 점유하고 채워 나간다. 그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 당당하게 솟아나 빛을 발한다.
따라서 화면은 ‘색의 향연’으로 술렁인다. 순도 높은 색채들이 어느 때보다 풍부한 회화를 만들어낸다. 색을 향한 작가의 애정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팔레트를 사용하지 않는 그는 물감통에서 직접 물감을 찍어 그린다. 물감의 혼합이 없으니 당연히 색채의 채도가 높아지고 덩달아 그림은 더욱 명료해진다. 순수한 상태의 감수성을 적극적인 색채 표현으로 구현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절대적이며 무한한, ‘존재의 근원’과 ‘생명의 몸짓’을 함께 체현하는 신종식의 색채 이념이다.
색면과 색면 사이는 작가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색 대비가 유난히 강한 그의 작품은 색과 색이 엇물리는 중간지대를 처리하기 어렵다. 엉성한 이음새는 어색한 작품을 낳기 십상이다. 그래서 중간 색조로 경계를 짓거나 공간을 비워 놓아 선이 유연히 흐를 수 있도록 만드는 수법을 쓴다.
그는 면과 면의 색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경계 짓는 곳에 잡지를 찢어 붙여 작업한 뒤 떼어낸다. 이로써 면과 면 사이에 간격이 생겨나고 저마다 폭과 형태가 다른 이 간격은 이미지들의 경계가 된다.
퍼즐처럼 분할한 자유로운 모양새의 색면도 볼거리를 선사한다. 거기에는 서로 다른 표정이 깃들어 있다. 언뜻 보면 파도 무늬, 기호 모양, 획선, 반점 등 여러 갈래로 나뉜다. 각각 표정도 다르지만 거기에 가해진 몸짓도 다르다. 긁고 찢고 두드린 흔적이 있는가 하면 겹치고 흘리고 문지르며 그린 흔적까지 다양하다.
그의 그림들은 하늘과 대지와 기둥, 그 가운데 내재하는 온갖 사물의 흔적을 고대 도시나 화석 공간의 이미지를 빌려 재현해 낸다. 기둥은 하늘로 솟고 활이나 건물의 잔해들은 대지와 바다로 침잠해 있다. 그림 속에서 이것들은 강렬한 명암 구조와 다양한 무늬의 패턴으로 상하좌우의 안정된 구조를 이룬다. 경계가 분명하고 어둠과 밝음이 확실한 풍경은 흡사 잃어버린 세계가 갑자기 탐험가에 의해 발굴되어 조명받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작가는 “기나긴 세월 속 존재의 흔적을 드러냄으로써 소멸하고 말 운명의 존재인 인간들에게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일깨우고자 한다”고 말한다.
작가 신종식은 작품을 빌려 자기 해방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삶과 제도의 경직된 그물망에서 자기 해방을 누리기 위해 예술을 한다.
달팽이가 기어가고 새가 날며 광휘의 태양이 떠 있는가 하면, 사다리와 물고기 이미지가 자리한다. 달과 별, 대지와 나무, 오래된 성과 산등성이, 피라미드, 활, 칼, 잎, 깃털, 뱀, 닭…. 모두가 어울려 자유와 꿈을 형용하고 있다. 갖가지 원색이 넘실거리고 화살표, 숫자, 문자 그리고 재미난 기호들이 서로 기대어 의지한 채 서 있다.
그는 한 폭의 하얀 캔버스라는 바다에 화석 물고기와 암모나이트를 띄우고 고대 유적지를 찾아 방랑하며 그만의 낭만적인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그의 작품에는 ‘꿈꾸는 자’의 자유가 담겨 있다.
신종식 홍익대 미술대 교수의 개인전이 ‘저 너머 시간으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오는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린다.
40년 가까운 그의 작업을 네 가지 테마로 나누어 시대별로 압축, 분류했다. 지하 1층은 ‘형상과 기호의 상징공간’(1985∼1999), ‘알레고리와 텍스트 속의 여행’(2000∼2008), 3층은 ‘선과 지표들의 시간’(2009∼2012), 5층은 ‘기억의 아틀라스’(2013∼2023)로 구성해 관객을 맞는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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