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CMIT·MIT와 폐질환 인과성 인정…“업체 위험성 무시”
동물실험 결과 놓고 다른 판단…“1심 때 제대로 반영 못해”
SK·애경 출시 당시 안전성 검사 누락도 ‘유죄’ 주된 근거 돼
서울고등법원이 11일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애경·이마트 관계자들의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유죄를 선고한 것은 해당 살균제 성분(CMIT·MIT)과 건강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연구 결과물의 증명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을 “전 국민을 상대로 만성 흡입독성시험이 행해진 사건”으로 규정했다.
쟁점은 검찰이 주장한 98명의 피해자가 SK·애경이 제조·판매한 ‘가습기메이트’ 제품 때문에 죽거나 병을 얻었는지 여부였다.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이 받은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이다.
이 혐의가 성립하려면 살균제 성분과 건강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물론 제조사의 주의의무 위반까지 충족돼야 한다.
1심 재판부는 SK·애경이 제조·판매한 가습기메이트 주원료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의 위해성을 입증한 연구가 없다며 해당 제품과 폐질환·천식 발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SK케미칼이 안전성을 검증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는지 등 나머지 쟁점은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전제 사실인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으니 나머지 쟁점은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다른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는 유죄를 확정받은 터였다. 그런데도 1심 재판부가 SK·애경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두 제품의 성분 차이 때문이었다.
대법원은 옥시 등의 PHMG·PGH 성분은 위해성이 입증됐다며 관련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는데, 가습기메이트 사건 1심 재판부는 해당 제품의 CMIT·MIT 성분은 위해성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지금까지 제출된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CMIT·MIT 성분의 위해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연구 내용에 대해 개별적,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여러 연구 설계나 분석의 문제점이 연구 결과의 증명력을 일부 탄핵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연구 결과의 신빙성까지 부정할 정도에 이른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의 주된 근거로 삼은 ‘동물실험’ 결과를 두고도 항소심 재판부는 다르게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쥐를 활용한 동물 흡입독성시험에서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와 폐질환·천식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인 동물실험 결과의 간접적·보충적 성격을 오해했다”면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과학적 의미를 간과하고, 실험 대상이었던 쥐와 사람 사이 종 간 차이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했다.
SK와 애경이 가습기살균제를 출시해 판매하면서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은 점도 유죄의 주된 근거가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기업이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간에는 (추가적인 위험성 판단이 필요하다는) 서울대 실험보고서가 건네지기도 했는데, 이 보고서를 보고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 보고서의 내용을 소비자들이 알았다면 해당 제품을 구매했을까 질문하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앞서 유죄를 선고받은 옥시 등의 관계자들과의 공동정범도 인정됐다. 공동정범은 행위자들끼리 범행한다는 의사나 연락이 있으며 객관적인 공동 실행 사실이 있어야 인정된다. 변호인들은 옥시 제품의 경우 SK케미칼 등의 제품과 물리화학적 특성이 다르므로 공동정범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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