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권거래위,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 승인
발행사들 수수료 인하 경쟁
국내 금융당국은 ‘금지’ 유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0일(현지시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를 승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위원회는 다수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상품(ETP)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ETP는 ETF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으로, SEC는 ‘현물 ETF’ 대신 ‘현물 ETP’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SEC 승인 결정에 따라 블랙록,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아크인베스트먼트, 인베스코, 위즈덤트리, 비트와이즈 애셋매니지먼트, 발키리,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 등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가 11일부터 가능해진다. 그러나 한국 금융당국은 서학 개미 투자자들이 국내 증권사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는 것을 일단 금지하기로 했다.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함에 따라 비트코인은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비트코인은 회계 규정이나 각종 규제 등을 이유로 기관투자가들이 쉽게 매입할 수 없었으나 현물 ETF가 출시되면 기관 포트폴리오에 쉽게 편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2013년부터 꾸준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SEC에 요청했지만, SEC는 ‘가격 조작 위험’ 등의 이유로 승인을 거부해왔다.
가상자산 시장 참여자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기다린 것은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유입 때문이다. 미국은 기관투자가의 가상자산 투자가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회계 규제 등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기관투자가가 복잡한 문제들을 우회해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에 담을 수 있는 수단이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따로 지갑(계좌)을 만들지 않고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은 기관뿐 아니라 개인투자자의 가상자산 시장 유입을 늘릴 수 있는 요인이다.
임민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비트코인 현물 ETF는 비트코인을 투자자가 직접 지갑에 보관하는 ‘셀프 커스터디(Self-Custody)’ 방식과 법적으로 동일하지만, 개인 키(Private Key) 분실 등 물리적 위험이 존재하는 셀프 커스터디 방식보다 안전하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단점은 투자자가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할 때와 달리 운용 수수료가 붙는다. 반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직접 살 때는 거래 수수료 외에 별도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사들도 이러한 단점을 염두에 두고 이미 수수료 인하 경쟁에 돌입했다. 블랙록은 비트코인 현물 ETF 수수료를 0.3%에서 0.25%로 인하했고, 수수료가 가장 높은 그레이스케일도 수수료를 2.0%에서 1.5%까지 낮췄다. 일부 발행사는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 초반에 수수료 면제 프로모션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당장 오늘부터 국내 증권사의 해외 주식 거래 서비스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날 증권사들에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중개하지 말라고 공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SEC도 현물 ETF 거래를 승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서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다고 해서 우리도 덜컥 그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 주식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하면 최대 1000억달러(131조원)가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탠더드차타드(SC)는 최근 보고서에서 연말까지 비트코인 현물 ETF에 500억~1000억달러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캐나다와 유럽에서 이미 비트코인 현물 ETF가 거래되고 있었던 만큼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서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ETF도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더리움 현물 ETF도 이르면 올해 상반기 SEC의 결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원식·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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