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3천억 짜리 피자’

김홍수 논설위원 2024. 1. 11. 20: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이철원

2008년 10월 31일 세계 각국 암호학 전문가들에게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발송자는 “중개인 없이 1대1로 운영되는 새 전자 통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는 문구와 함께 A4 9장 분량의 논문을 다운받는 웹사이트 링크를 보내왔다. 논문 제목은 ‘비트코인: 개인 간 전자화폐 시스템’이었다. 비트코인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1년 여 뒤인 2010년 5월 미국에서 비트코인이 상거래 결제 화폐로 처음 사용됐다. 한 개발자가 “1만 비트코인을 줄 테니 피자 두 판을 배달해달라”고 주문했다. 집 근처 피자 가게가 주문에 응했다.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한 판에 3000억원짜리 피자를 먹은 격이다. 2010년 7월 일본에서 세계 최초 비트코인 거래소가 열렸다. 1개당 0.06달러로 첫 거래가 이뤄졌다. 하지만 축복보다 저주가 쏟아졌다.

▶”과대 광고 사기에 불과하다”(CNBC), “무의미해질 운명이다”(유럽 중앙은행), “폰지 사기보다 더 나쁘다”(인도 중앙은행). 한 웹사이트가 2009년 이후 비트코인의 파멸을 예고한 주요 언론사 기사, 주요 인사 발언을 집계한 결과 475건에 달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목이 잘리면 더 많은 목이 솟아나는 히드라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왔다. 수 많은 인재가 대박을 꿈꾸며 미래 세상에 대한 베팅 대열에 가세했다. 대체 불가 토큰(NFT) 같은 코인 생태계가 속속 만들어졌다.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비트코인을 바퀴벌레에 비유한다. “부패한 물질을 영양분으로 바꾸고 모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등 사람들의 혐오에도 불구하고 이점을 가진 바퀴벌레처럼, 비트코인 또한 투자 포트폴리오 다각화, 독재 정권하에서도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용도를 통해 금융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 왔다”는 것이다.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북한 핵실험,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 대접을 받으며 몸값이 치솟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탄생 16년 만에 제도권 금융 상품으로 등극한 것이다. JP모건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입만 열면 “성매매, 조세 회피, 자금 세탁에 쓰이니 비트코인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런데 정작 JP모건은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손을 잡고 비트코인 ETF 개발에 참여했다. 비트코인이 ‘한때의 광풍’이 아니라 ‘제도권 자산’으로 자리 잡았음을 이보다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가 있을까 싶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