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9m 빌딩 완공… 세계 1위 이어 2위도 ‘메이드 바이 코리아’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중심부에 우뚝 솟은 초고층 빌딩 ‘메르데카 118′ 앞. 말레이시아 압둘라 국왕 부부 등 최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빌딩 개관식이 열렸다. 이 빌딩은 지상 118층에 꼭대기 첨탑을 포함한 높이는 679m.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828m)’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완공된 것이다.
이 빌딩의 시공사는 국내 건설업체인 삼성물산. 앞서 세계 최고층 빌딩 1위인 ‘부르즈 할리파’도 삼성물산이 시공사였다. 롯데건설이 2016년 완공한 서울 ‘롯데월드타워’(555m·세계 6위)를 포함하면 세계 7대 초고층 빌딩 가운데 3개가 한국 건설사의 시공으로 탄생했다. ‘메르데카 118′에서 약 2km 지점에 있는 높이 452m의 세계 19위 최고층 빌딩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의 시공사도 삼성물산이다.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세계에서 150층 이상 건물을 지어 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정확한 공기 준수와 풍부한 경험으로 초고층 빌딩 시공에서 강점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콘크리트를 소방 호수 26배 압력으로 500m까지 한번에 쏘아 올려
초고층 빌딩은 건물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일반 건물보다 훨씬 강도가 센 초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메르데카118′에는 주사위 한쪽 면(1㎠) 정도 밖에 안되는 좁은 면적으로 소형차 1대에 해당하는 950kg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콘크리트가 사용됐다. 시멘트와 자갈 등을 배합한 콘크리트 반죽을 물처럼 잘 흐르게 만든 뒤, 압축 펌프로 510m 이상으로 단 한번에 쏘아 올리는 ‘고압 압송 기술’이 적용됐다. 이 압력은 26MPa(메가파스칼), 소방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 압력(1MPa)의 26배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기술력이 없으면, 압력 부족으로 콘크리트를 최상부까지 올리지 못하거나, 배관이 막혀 터져버린다”고 했다.
초고층빌딩은 건물을 ‘직각’으로 세우기도 쉽지 않다. 삼성물산은 부르즈 할리파 시공 때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위치추적시스템(GPS)을 활용해 건물의 수직 각도와 수평을 실시간 측정하는 기술을 적용했다. 이번 ‘메르데카 118′에도 GPS를 활용해 건물의 수직과 수평을 측정하며 건물을 올렸다.
◇1970년대부터 이어온 해외 시공의 노하우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초고층 빌딩 시공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대우건설은 말레이시아 ‘텔레콤 타워’(310m)와 ‘IB타워’(274m)를 시공했다. 이 때 시공 과정에서 건축물의 기울어짐 등을 미리 예측하는 BMC(시공 중 변위 제어) 기술을 개발해 적용했다. 이 기술은 베트남에까지 수출됐다.
최원철 한양대 교수는 “초고층 빌딩 시공은 국내 건설사들이 1970년대부터 수 십년간 쌓은 실적과 명성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의 시공을 쌍용건설이 따낸 것도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해외 건설에서 얻은 신뢰 때문이다. 이명식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회장은 “한국 건설사들의 다양한 시공 기술은 세계 고층 빌딩 시공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구조설계, 특수시공 등은 여전히 외국기업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유명 건축물 시공에선 두각을 나타내지만, 설계나 특수 시공 등 다른 분야에선 여전히 해외 업체에 뒤지는 게 현실이다. 시공이 인력과 원자재를 투입해 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진행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인 반면, 설계나 특수 시공은 원가는 적게 들지만, 건축에 꼭 필요한 분야여서 수익성이 높다. 특히 설계는 사람의 두뇌만 있으면 되지만, 총사업비의 약 10%를 가져간다. 이런 분야는 고도의 기술력과 오랜 기간 축적한 경험이 핵심 경쟁력이다.
삼성물산이 시공한 ‘메르데카118′은 호주 멜버른에 본사를 둔 펜더 캣살리디스(Katsalidis)라는 업체가 설계를 맡았다. 호주와 동남아시아에서 다수의 초고층 프로젝트를 설계한 업체다. 삼성물산이 지은 세계 최고층 건물 부르즈 할리파는 초고층 설계 분야 글로벌 1위인 미국 SOM이 설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롯데월드타워 역시 시공은 롯데건설이 했지만 위성 측량과 핵심 설계 등은 외국 기업들의 손을 빌렸다.
초고층 건축에는 기본 구조 설계부터 인공위성을 활용한 측량, 빌딩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제하는 진동 제어, 건물이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을 막는 연쇄 붕괴 방지 등 특수한 기술이 많이 쓰인다. 도면대로 시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들이다. 진입 장벽이 높은 탓에 오랜 업력을 지닌 미국, 유럽, 일본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SOM은 1936년 설립돼 90년 가까이 건축 설계와 도시 계획만 해오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진동 제어나 위성 측량 등 일부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례는 거의 없다. 기술이 있어도 비슷한 사업을 수행했던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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