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플리] 1. '재즈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ewey Davis III, 1926~1991)
띵플리. 국내외 ‘띵곡(명곡)’들 속 이야기와 가사를 통해 생각(Think)거리를 선물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나눕니다. 계절이나 사회 이슈 등에 맞는 다양한 곡을 선정, 음악에 얽힌 이야기나 가사 등과 함께 추천합니다. 음악은 시대의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장르와 시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최신 팝 음악부터 숨겨진 명곡까지 다양한 음악 메뉴를 내놓겠습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대중문화의 역사와 흐름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할 계획입니다. 독자들과 함께하는 오프라인 청음회도 열 예정입니다. 띵플리 첫 시간, 미국 재즈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가 남긴 선율 속 고민을 읽습니다.
1.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ewey Davis III, 1926∼1991)
‘kind of blue(1959·콜롬비아레코드)’
“비가 오는 일요일은 나를 좀 혼란스럽게 만들어. 비가 오면 빨래를 할 수 없고, 다리미질도 못하게 되니까. 산책도 못하고, 옥상에서 뒹굴지도 못하지. 책상 앞에 앉아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를 자동 반복으로 틀어 놓고 몇 번이고 들으면서 비 내리는 마당 풍경이나 멍하니 바라보는 정도가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는 일요일 아침, 나오코에게 편지를 쓴다. 큰 컵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휴일의 나른함과 무료, 공간을 녹아내리듯 채워나가는 음악.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는 나로 인해 비워진 어느 공간과 공간, 중간 어디쯤 있을 듯 싶다.
고백하건대 재즈 문외한이 마일스 얘기를 한다는 것은 참 웃기는 얘기다. 하지만 영화 ‘마일스’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시대 상황, 물질숭배와 개인, 물화(物化)와 소외, 차별과 허무, 시대상황을 극복하려는 절박함, 음악보다 먼저 느껴지는 고독 혹은 고민….
1950∼60년대는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자본주의가 극성기를 치닫는 시기. 물질과 도덕, 가치의 혼란, 반전운동과 인권, 그 모든 것들이 용광로처럼 끓어올라서 아마도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어려운 시기.
결국 선택으로 귀결된다. 다른 말로 틀어보면 시대를 바꾸는 고민이랄까. 늘 혁명은 그런 어수선 속에서 우연한 계기처럼 등장하기 마련이다.
중산층 치과의사의 아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명문 줄리아드 음대 진학. 1950∼60년대를 열풍처럼 지나던 흑인민권운동 시대. 그 한복판으로 들어선 재즈계의 거장. 음악이 무기였던 시절, 잘나가던 흑인 트럼피터는 거리로 나가기 보다는 음악에 더 몰두했다. 동료들의 거칠고 단순한 음악은 나른하고 느슨한 관객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러다보니 그에게 평단의 평가가 더 날카롭고 냉정했다. 한 평론가로부터는 “마일스가 재즈를 죽였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또다른 선택.
울분을 토하듯 쏟아내는 재즈의 전율. 거칠지만 그것으로 족했던 비밥이 지배하던 재즈의 시대. 그러나 관객없는 음악, 소수의 잘난 자기과시. 마일스가 두려워한 것은, 재즈가 대중과 멀어지면서 소수 흑인의 음악으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즈음 듣게 된 록 음악과 재즈 음악을 비교하면서 재즈는 ‘음향적인 면에서 너무 얄팍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장정일 ‘악서총람’, 2015)
다시, 1949년 파리.
마일스 데이비스는 악단을 이끌고 파리로 향했다. 2차대전이 끝난 유럽, 새로움과 변화, 자유가 넘쳐나던 파리. 그 한복판에서 피끓는 젊은 천재 트럼피터 마일스가 나타난 것이다. 재즈,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미국의 음악은 사르트르나 피카소 같은 당시 유럽 지성을 사로잡았다.
이 해에는 쿨재즈의 탄생을 알리는 ‘Birth of the Cool’이 발표됐다. 찰리 파커로 대표되는 비밥의 시대에서 쿨재즈로 이전되는 시기, 즉흥적이고 열정적인 재즈에서 서정적이고 냉소적인 연주로의 전이.
마일스는 파리의 짜릿한 경험을 뒤로 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피부색으로 차별받지 않는 유럽, 음악과 능력만으로 존경받았던 파리. 줄리엣 그레코(Juliette Greco)와의 만남.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피부색 만으로 쓰레기 취급 받는 미국행 귀국길에 오른 것이다.
그에게 코카인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리고 10년 뒤인 1959년 ‘kind of blue’가 발표됐다. 재즈는 몰라도 집 어딘가에 하나 정도는 있을 것 같은, 어느 선술집이나 카페에서 우연히 듣더라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주요 사이트마다 마일스 최고의 걸작이자 모달 재즈의 정수라고 떠받드는 그 음반이다. 색소포니스트의 전설인 존 콜트레인과 빌 에반스 등이 참여했다는 것은 사족이다.
음악평론가 루시엥 말송은 “재즈의 역사에서 날카롭고 건조한 이 지상의 북소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만유인력의 장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평가했다.
마일스의 음악적 성취는 굳이 논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모달이니 어쩌니 하는 얘기들은 음악호사가의 논평으로 돌려놓자. 그러나 비틀즈와 록이 시대적 주류로 떠오른 시대, 재즈에 록을 결합시켜 새로운 부흥을 꿈꾸던 이 이상주의자의 고민과 꿈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마일스의 명반으로 추앙받는 ‘Bitches Brew’(1970)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반(내가 제일 공감하는)으로 추앙받는 비틀즈의 ‘페퍼상사의 고독씨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9)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얘기만 들어도 그 고민의 느낌이 와닿는다.
우리는 그 무엇도 모르는 이 암흑과 A.I의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헤쳐나가야할지, 결국 우리도 선택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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