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재개발에 반대한다

기자 2024. 1. 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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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다섯에 집을 샀다. 돈이 많아 집을 산 건 아니고 당시 해마다 2000만원씩 뛰는 전셋값에 쫓겨나지 않고 그 동네에서 살고 싶어서 친구와 공동으로 집을 사버렸다. 남들이 빌라 사면 나중에 안 팔린다, ‘영끌’해서 무조건 아파트를 사라 했지만 호기롭게 작고 오래된 빌라를 샀다. 이로써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4년, 재건축을 쉽게 할 수 있게 안전진단 등의 조건이 낮아졌다. 그 결과 우리 동네 여기저기 모아주택이니 가로주택이니, 축 재건축 선정 등의 현수막이 나부낀다. 사무실이 있는 사가정역 근처도, 지난주 들른 광주광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공산당 선언식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유령-재건축이라는 유령이, 전국에 떠돌고 있다”.

한국은 20년 이상 노후화된 건물이 전체 건물의 67%를 차지한다. 그러나 재건축이라는 ‘싹쓸이’만이 해답은 아니다. 노후 건축물의 경우 재건축 91.3%, 재개발 7.7%로 신축되며 기존 건물을 수리하는 리모델링은 0.4%뿐이다. 건물의 목적이 에너지 효율과 삶의 질 향상보다는 아파트를 높게 지어 최대의 투자 수익을 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사는(거주)’ 것보다는 ‘사는(구매)’ 물건이다.

요즘 지은 대규모 아파트는 건물 현관이 아니라 단지 전체를 두른 담벼락에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다. 그 자리 골목마다 있던 문방구, 채소가게, 꽃집 등은 사라지고 대신 아파트 상가에 가맹점이 들어선다. 내게 동네 골목은 주름이 펼쳐지며 다양한 음을 내는 아코디언 건반이라면 대단지 아파트는 주름이 묶여 단 하나의 소리만 나는 건반처럼 보인다. 덴마크는 주요 상점가에 은행이 신규 지점을 여는 행위를 규제한다. 은행 외벽은 보안상 창문과 문이 거의 없는데, 은행이 많아지면 거리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리의 사회성이란 건축가 얀 겔의 말처럼 “인간의 삶과 도시의 매력에 가장 큰 요소는 역동적이고 열려 있으며 생기 넘치는 길가”다. 대규모 재건축은 세입자와 분담금을 낼 수 없는 집주인만 내쫓지 않는다. 그 동네 사람들이 쌓아온 역사와 고유성, 거리의 사회성과 골목의 매력도 내쫓는다. 나는 주차가 힘들고 자잘한 망원동 골목과 40년 된 우리 집의 나무 천장을 사랑한다.

낡은 동네를 다르게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재사용은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 쓰레기 발생량을 줄일 수 있어 재활용보다 환경적으로 더 낫다. 건축 분야는 온실가스 대량 배출 4대 분야로 전체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에너지 효율 높은 새 건물을 올려도 이미 철거와 자재 투입 등에 에너지를 쓰고 쓰레기가 발생한 후다. 건물 생애 주기 중 35~50%의 탄소가 건물 올릴 때 생긴다. 건설 폐기물은 전체 폐기물의 절반을 차지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를 배출한다.

우리 집은 오래된 벽돌 빌라인데 단열과 창호 공사 등을 해서 들어왔다. 이사 후 1년 동안 전 거주인에 비해 약 90%의 에너지 사용량이 줄었다. 그런데 작년 말 우리 동네는 신속 통합 재개발 구역이 되었다. 쫓겨나지 않으려고 집을 샀는데 신속하게 쫓겨나게 생겼다. 우리도 현수막을 달기로 했다. 현수막에는 작고 오래된 동네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서울의 문화지역 망리단길이 사라집니다, 라고 적혀 있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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