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는 전국민 대상 독성실험"... 법원, 제조사 임직원에 유죄

박준규 2024. 1. 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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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한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해 소비자들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조·판매사 전직 임직원들이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가 주 원료인 가습기살균제 '가습기 메이트' 등을 제조 또는 판매해 12명을 사망하게 하고 86명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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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IT/MIT 살균제로 98명 사상 혐의
1심 무죄... 2심선 "전원 금고형" 선고
피해자 "1800명 죽었는데 솜방망이"
2020년 12월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질병관리본부 2011년 가습기메이트(CMIT/MIT) 독성실험 적정성’ 조사결과 발표 및 기자회견에서 가습기메이트가 전시되어 있다. 뉴스1
"장기간에 걸쳐 불특정다수 국민을 상대로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 시험이 이뤄졌다."
(서울고법 가습기살균제 담당 재판부)

유해한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해 소비자들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조·판매사 전직 임직원들이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무죄로 본 1심과 달리, 2심은 가습기살균제 자체의 유해성과 인체에 미친 악영향이 입증된다고 봤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서승렬)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그 외 SK케미칼과 하청업체, 애경산업, 이마트 전직 임·직원 11명은 금고형 집행유예에서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금고는 신체 자유는 박탈하되 징역과 달리 강제노역은 시키지 않는 형벌이다.

이들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가 주 원료인 가습기살균제 '가습기 메이트' 등을 제조 또는 판매해 12명을 사망하게 하고 86명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이 주 원료인 옥시싹싹 등을 제조·판매한 업체의 관계자들과 함께 주의의무를 위반해 폐질환 또는 천식을 유발했다고 봤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98명 중 94명이 옥시싹싹 등을 함께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는 피해자 22명만 해당됐다.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선고공판 기자회견 한 참석자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순미(오른쪽) 씨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시스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살균제로 폐질환 또는 천식이 유발됐거나 악화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달리 판단했다. 우선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자로서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안전성을 꼼꼼히 검사하지 않은 채 제품을 판매했고,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했는지 추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해당 살균제에서 백혈구 수치 감소 등이 나타나 실험이 더 필요하다는 서울대 실험 결과를 소비자들이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부 피고인들은 살균제 용기에 '인체에 해가 없는 제품'이라는 허위 표시도 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과 피해 사이의 인과성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메이트 등과 폐질환 또는 천식 간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연구가 존재한다"며 "전문 지식을 갖춘 의사들이 가습기 메이트만 사용한 피해자들의 피해를 인정한 건 동물을 상대로 이뤄진 실험 결과보다 유력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날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피해사실을 읽으면서 너무나 감정적으로 힘들었다"며 "피고인들이 (판결에) 많은 불만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과실 책임을 굉장히 무겁게 봤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SK·애경·이마트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피해자에게 항의를 받고 있다. 뉴스1

선고 후 서울고법 앞에 모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이미 사망한 피해자들을 향해 짧은 묵념을 한 뒤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피해자들은 기다렸던 유죄 선고가 나온 것을 환영하면서도, 사회적 참사의 규모와 고통에 비하면 가벼운 처벌이라며 아쉬워했다.

2021년 아내를 잃은 김태종씨는 “집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2년간 중환자실을 전전했다”며 “지금껏 사망자가 1,800명이 넘는데 고작 금고 4년을 선고하는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호소했다. 산소발생기를 끼고 현장에 온 조순미씨는 “검찰 구형(금고 5년)보다 못한 선고가 나왔지만 재판부가 가해기업 책임을 인정했다는 부분만큼은 마음이 놓인다”며 “이제는 정부가 사회적 참사에 책임을 지고 제대로 된 지원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형사재판 진행 과정. 그래픽=김대훈 기자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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