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형사 법정서 12년 만에 나온 가습기살균제 유죄 판결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 대표에게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드러난 지 12년 만이다.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지만, 돈벌이에만 급급해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기업 대표에게 사법 철퇴가 내려진 의미가 크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11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고 제조·판매해 98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1심은 제품의 주원료인 CMIT·MIT 등이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쟁점은 이들이 원료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는지, 혹은 알기 위한 노력을 다했는지 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들이 제품 출시 과정에서 안전성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을 당시 과학으로는 밝힐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험성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제품을 개발하거나 팔지 말았어야 한다. 설령 이런 상황에서 제품을 제조·판매했다면 이후라도 제품의 위험성 여부를 확인하고 관찰하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SK케미칼은 흡입독성시험을 맡겨놓고도 결과가 나오기 8개월 전인 1994년 11월 서둘러 제품을 출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습기 이용자가 많은 겨울철에 제품을 내놓기 위해 실험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제조·판매에 나선 것이다. 돈벌이에 눈이 멀어 소비자 안전은 뒷전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1심 판단의 오류도 지적했다. 쥐 실험으로 위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에게 병이 발생할 가능성을 부정하면 피해자 보호에 심각한 공백이 생긴다고 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형사재판과 별도로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7883명, 정부 지원 대상자는 5445명이다.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날 판결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제대로 해결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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