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또 도진 `290만 신용사면` 票퓰리즘

한기호 2024. 1.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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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 지원
재건축·금투세 등 잇단 선심정책
총선 앞두고 모럴해저드 부추겨
유의동(왼쪽 세번째)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과 정부가 총선을 겨냥해 연일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정책들도 적지 않은데 국회도 건너뛰는 양상이다.

당정은 11일 최대 290만명의 서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신용회복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자영업자에 대한 코로나 지원금 8000억원 상환을 면제하고, 은행 팔을 비틀어 2조원대의 대출이자를 돌려준 데 이어 서민·소상공인의 대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신용사면'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신용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금융당국·은행업계와 함께 한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협의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서민과 소상공인들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대출을 연체했지만, 이후 전액 상환을 해도 과거에 연체가 있었다는 이유로 금융거래와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같은 방안을 밝혔다.

이날 민·당·정 협의회에는 국민의힘에서 유 정책위 의장, 이태규 정책위 수석부의장, 송석준 정책위 부의장, 송언석 제1정책조정위원장, 정희용 원내대변인이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민간에서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 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 이창화 금투협회 전무, 신희부 나이스평가정보 대표이사, 송철 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 등이 자리했다.

협의회에서 여당은 2021년 9월~2024년 1월 '2000만원 이하' 연체자 중 오는 5월말까지 전액 상환자를 대상으로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와 금융권에 요청했다. 유 의장은 "금융권 지원시 최대 290만명이 연체기록 삭제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며 이에 따른 신용점수 상승, 카드발급·신규대출 정상화 혜택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통상 대출을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신용정보원이 최장 1년간 연체 기록을 보존하면서 금융기관과 신용평가회사(CB)에 이를 공유한다. 금액에 따라 길게는 5년까지 금융거래 제한을 받는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당시 어려움으로 연체 기록이 생긴 이들도 카드 사용과 대출 이용에 불이익을 받아왔다. 당정은 사실상의 사면 조치를 통해 이들의 재기를 돕겠다는 것이다. 유 의장은 "정부에서도 과거 IMF 시절 두차례, 그리고 2021년 8월 신용회복에 세차례를 지원했던 선례를 들어 이번에도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2021년 진행된 신용회복 지원에선 지원 대상 연체 이력 정보를 금융기관 간 공유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신용평가사의 개인·개인사업자 신용평가에도 미반영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개인신용평가와 여신심사 시 연체 이력이 공유되지 않으면 △신용점수 상승 △카드발급 △대출 등 금융거래 접근성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당시 약 200만명의 신용점수가 평균 670점에서 704점으로 34점 상승했다.

당정은 또 금융권 대출과 통신비를 동시에 연체한 최대 37만명에 대해 통신업계와 신용회복위원회가 나서 금융통신 통합채무조정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 의장은 "통신비까지 연체하는 경우 경제 사정이 그만큼 더 어려워졌단 걸 방증한다"며 적극적인 통합 채무조정을 거론했다.

당정은 기초수급자에 대한 신속 채무조정 특례도 확대키로 했다. 신속채무조정 이자 감면 폭을 현행 '30~50%'에서 '50~70%'로 확대하면 연간 기초수급자 5000명이 재기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서민금융'을 강조하며 "통신비도 삶에 너무 밀접해 있고, 이 채무도 중요한데 여태 신용회복 지원대상에 빠졌는데 이것도 같이 넣어 어려운 분들이 신용회복 빨리 할 수 있게 지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도덕적 해이 우려와 관련, "신용사면이 최종적으로 전액 상환한 사람들만 대상이 되는 점을 국민들께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금융권은 코로나 등으로 발생한 소액연체를 성실히 상환한 서민·소상공인에 대해 해당 연체이력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신용평가 등에도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재인 정권 시절의 포퓰리즘 정책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전진단조차 없는 재건축 허용, 글로벌 룰에 어긋나는 주식 공매도 금지,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연 4%가 넘는 이자에 대한 은행들의 2조원대 캐시백 등 경제주체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를 부추기는 정책들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경영학부)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지만, 도덕적 해이 초래 가능성이 있다"며 "연체횟수, 연체 대비 채무상환비율 등을 감안해 성실하게 상환의지가 있는 차주 위주의 선별 사면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은행의 신용평가는 연체할 가능성이 있는 차주냐 아니냐를 판단하는데 오랜 시간 쌓아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실하게 은행을 갚아온 개인들에겐 신용회복지원이 역차별로 느껴질 수 있으며, 빈번한 신용사면이 '연체 기록 삭제가 상시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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