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아당뇨 투병 중 사망 또 있었다” 1년만에 되풀이된 비극···왜?
1형당뇨 진단 후 합병증 등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잇따라
췌장장애·중증난치질환 등록 등 정부 지원 절실 목소리
충남 태안에서 9살 딸의 소아당뇨를 치료하느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가운데, 1년 여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11일 한국소아당뇨인협회에 따르면 소아당뇨(제1형 당뇨) 투병 중 합병증으로 사망하거나 신병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22년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A양이 대표적이다. 협회 회원으로 등록되어 장학금까지 받으며 삶에 열의를 보였던 A양은 오랜 기간 당뇨병을 앓으면서 콩팥 기능이 악화돼 혈액 투석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김광훈 한국소아당뇨인협회장은 "7년 넘게 (투석을) 받아보니 나름 덤덤해졌다"며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친구가 평생 투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던 모양"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만성질환인 당뇨병은 크게 1형과 2형으로 나뉜다. 한국인 당뇨병 환자의 대부분은 비만, 기름진 음식, 스트레스, 운동부족 등의 요인으로 인슐린 저항성(체세포가 인슐린에 반응하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는 2형 당뇨병이다. 지난 9일 충남 태안군의 한 주택에서 부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B양이 앓았던 질환은 1형으로 기전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자가면역 기전으로 췌장의 베타세포가 대부분 파괴되어 인슐린을 전혀 분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생 외부에서 인슐린을 주입해야 한다. 인슐린을 주입하지 않은 채 방치할 경우 고혈당이 악화되어 당뇨병성 케톤산증이나 고삼투압성 고혈당 증후군 같은 급성 합병증이 나타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체내 요구량보다 많이 주입하면 저혈당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협회에 따르면 2021년 이후 3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A양을 포함해 5명의 회원이 숨졌다. 스물한살 K군이 2021년 저혈당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2022년 스무살 J양이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지난해에도 중학교 1학년 여학생과 2학년 남학생이 당뇨 합병증으로 갑작스럽게 떠났다. 전부 협회에서 제공하는 당뇨병 관리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장학금을 지원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회원들이다.
1형 당뇨병 환자는 고혈당 또는 저혈당 쇼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수시로 혈당을 측정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양의 인슐린을 주사해야 한다. 과거에는 혈당 측정을 위해 많게는 하루에 10번 이상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야 했다.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건 2018년부터 국내에 '연속혈당측정기(Continuous Glucose Monitoring·CGM)'가 시판되면서다. CGM은 환자의 팔이나 복부 등에 체내 혈당 수치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탑재된 패치를 부착하면 실시간으로 혈당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의료기기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가 1형 당뇨병을 앓는 자녀를 위해 국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CGM 연속혈당측정기를 구입·개조했다가 검찰에 고발당하면서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이후 다국적 의료기기업체의 제품이 정식 허가를 받아 국내 도입됐다. CGM으로 혈당을 측정하고 측정값에 따라 자동으로 인슐린을 주입하는 '인슐린펌프'를 함께 사용하면 매번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지 않아도 된다. 1형 당뇨병에 한해 CGM과 인슐린펌프에 대한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많은 환자들의 숨통이 트였다.
정부는 오는 3월부터 19세 미만 1형 당뇨병 환자에 대한 인슐린펌프와 전극(센서), 소모성 재료 등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지원을 확대한다. 소아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30%에서 10% 수준으로 낮추면서 기존에 380만 원이 넘던 경제적 부담이 45만 원 수준으로 경감될 전망이다.
그러나 1형 당뇨병 환자와 가족들은 여전히 부담이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제한된 건보 재정으로 일부 비용을 부담하는 것만으로 이들 가정의 막막함을 덜어줄 수 있을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10대, 혹은 그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1형 당뇨병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20대 초반에 눈, 콩팥에 합병증이 생긴다. 혈당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부모가 바쁘거나 미처 챙겨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경우 한참 민감할 시기인 10대 청소년들이 오롯이 질환 관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1형 당뇨병은 드문 데다 병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초기 1-2년간 집중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은 엄마가 열일 제쳐두고 아이 케어에 집중하면서 공부를 하고 혈당관리도 잘 해줄 수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집은 그마저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CGM이나 인슐린펌프 같은 최신 의료기기 사용에 따른 환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세심히 가르쳐 주지 않으면 비관하지 않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1형 당뇨병을 '췌장장애'로 인정해 달라고 토로한다. 김광훈 회장은 "어린 아이가 당뇨병 진단을 받으면 평생 낯선 질병을 짊어져야 한다는 심리적 충격과 불안감, 경제적 부담, 멀리 있는 큰 병원을 오가면서 발생하는 의료비 외적인 부담까지 맞닥뜨리게 된다"며 "이번 태안 가족 사건을 통해 당뇨병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수많은 고통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사건은 다른 당뇨병 가족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우울감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김 회장은 "단순히 요양비 지원을 추가하는 것만이 전체 문제해결은 아니다"라며 "1형 당뇨병이 장애 질환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의료계에서는 1형 당뇨병을 '중증 난치질환'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형 당뇨병 환자들은 동네 병의원이 아닌, 상급종합병원에서 관리와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중증으로 인정되지 않다 보니 본인 부담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중증 난치질환으로 인정되면 상급종합병원 등에서의 본인 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김대중 교수는 "당뇨병을 앓는 소아, 청소년, 청년은 일종의 취약계층에 해당한다. 호주, 캐나다,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1, 2형을 떠나 소아청소년 및 청년 당뇨병에 대해 별도의 관리전략과 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법률을 제정했다"며 "젊은 당뇨병 환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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