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혹은 개혁가…이낙연의 시간은 올까

박성의 기자 2024. 1. 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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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이재명의 사당화’ 작심 비판하며 전격 탈당
野일각 “결국 미풍” vs “총선 변수” 전망 분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민주당과의 결별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가 민주당에 몸담은 지 24년만이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됐다며 이재명 대표를 거칠게 비판했다. 이로써 이 전 대표와 민주당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

당을 박차고 나온 이 전 대표의 '홀로서기'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경륜과 인지도를 고려하면 제3지대의 '구심점'이 될 것이란 시각과, 오랜 당에 비수를 꽂은 '배신자' 프레임 탓에 확장성을 지니기 어려울 것이란 비판이 공존한다. 총선을 3개월 앞둔 지금, 과연 '이낙연의 시간'을 올까.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길위에 김대중' 시사회에 참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민주 탈당 "다당제 시작해야"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는 총선이 열리는 새해를 불과 이틀 남긴 지난달 30일 전격 회동해 갈등 봉합을 시도했지만 불발됐다. 이 전 대표가 연말까지 응답해달라며 제시했던 '대표직 사퇴 및 통합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요구에 이 대표가 수용을 거부하면서다. 이날을 계기로 이 전 대표는 신당 창당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숙고 끝에 이 전 대표는 11일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한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저는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들락날락했지만, 저는 민주당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지켰다"며 "제게 '마음의 집'이었던 민주당을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망설였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분당,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과 국민의당 분당 때도 민주당에 잔류했다.

이 전 대표는 "그러나 민주당은 저를 포함한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됐다"며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고 구현할 만한 젊은 국회의원들이 잇달아 출마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내 비판자와 저의 지지자들은 2년 동안 전국에서 '수박'으로 모멸 받고, '처단'의 대상으로 공격받았다"며 "저는 그런 잔인한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악화됐다. 포용과 통합의 김대중 정신은 실종됐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비판과 동시에 '반성문'도 썼다. 그는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둔 시기에 서울과 부산의 공조직을 가동하는 것이 대선 승리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얕은 생각을 제가 떨쳐 버리지 못했다"며 "또한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위성정당 허용 결정에 제가 동의한 것도 부끄럽다"고 했다.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 출판기념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한 대권주자" 對 "실패한 대권주자"

총선을 3개월 앞두고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선언하자 야권에선 격렬한 비판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고자 자신의 친정인 민주당에 '돌'을 던졌다는 주장이다. 이 전 대표를 따랐던 친이낙연계 일부 의원들조차 이 전 대표를 성토하는 모습이다.

친낙계인 이개호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 전 대표를 작심 비판했다. 이어 "최악의 윤석열 정권과 싸워 이겨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최고의 가치는 총선 승리"라며 "분열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노리고 있단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그는 이 전 대표의 탈당 선언 직후 "이낙연은 2021년 1월 박근혜 사면론으로 정치적 폭망의 길로 들어섰고, 2024년 1월 탈당으로 정치적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며 "최종 목표는 '낙석연대'(이낙연+이준석 연대)를 경유해 국민의힘 쪽 대선후보가 되는 게 꿈일까? 극단적 선택 이해 불가"라고 비난했다.

반면 '이낙연 신당'이 제3지대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 섞인 시각도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이 전 대표의 지지층 ▲여야 거대양당 지도부와 구분되는 중도 성향 ▲입법부와 행정부를 두루 경험하며 쌓은 경륜과 인지도를 고려하며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분석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지역구의 민주당 한 의원은 "이 전 대표의 탈당을 마냥 폄하하기에 앞서 당은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며 "'어대낙'(어차피 대통령은 이낙연) 바람이 불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어떤 계기를 맞느냐에 따라 그 돌풍이 다시 불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재명 대표의 팬덤인 '개딸'을 저격한 이 전 대표가 진보 진영의 표를 끌어오기는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분석도 있다. '배신자' 딱지 탓에 대선 경선에서 연이어 낙선했던 유승민 전 의원의 전철을 이 전 대표가 밟게 될 것이란 우려섞인 전망에서다. 현역 의원 중 이 전 대표를 따르겠다고 밝힌 인사가 없다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실제 최성 전 고양시장,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만이 신당 합류를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이낙연 신당'의 세가 커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 논란과 함께 선거제 개혁과 공천을 두고 민주당의 내홍이 고조되고 있는 게 변수다. 탈당을 선언한 김종민·조응천·이원욱 의원, '개혁신당'(가칭)을 띄운 이준석 전 대표 등이 이 전 대표와 연대할 경우 차기 총선에서 '이낙연의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낙연 신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군소정당에 불과할 것"이라면서도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신당이 총선 연대를 할 가능성이 있고, 만약 그렇게 해서 두 정당이 22대 총선에서 10석씩만이라도 의석을 확보한다면 추후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해 국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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