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원 이하 연체자 전액 상환땐 '신용 족쇄' 풀어준다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안정훈 기자(esoterica@mk.co.kr) 2024. 1. 11. 17: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정, 역대 최대 신용 사면
2021년 9월~올해 1월 대상
신평사 연체 등록액이 기준
채무기록 지워져 대출 숨통
당국 "장기연체 억제효과 커"
일각선 도덕적 해이 우려
총선용 선심정책 지적도
정부와 국민의힘이 2000만원 이하 연체채무를 성실히 상환한 채무자들의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는 '신용사면'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1일 국회에서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왼쪽부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가 진행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정부와 여당의 신용사면이 역대급 규모로 진행되는 것은 코로나19가 종식된 상황 속에서도 적지 않은 서민과 소상공인들이 고금리와 고물가로 고통받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금융채무 관련 신용사면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최대 290만명에 달한다. 또 최대 37만명에 달하는 통신비 연체자에게도 채무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11일 당정이 발표한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방안에 따르면 이번 신용사면 대상자는 2021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2000만원 이하 연체자 중에서 연체채무를 전액 상환한 사람이다. 연체가 남아 있더라도 올해 5월 말까지 전액 상환할 경우 혜택을 받는다. 정부와 여당이 예상하는 대상자 규모는 290만명으로 △2000년 1월 32만명 △2001년 5월 102만명 △2021년 8월 228만명 등 앞서 있었던 세 번의 신용사면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체 연체 발생자는 296만명이다. 이번에 신용사면 대상이 되는 2000만원 이하 소액연체자는 290만명으로 98%를 차지한다. 그 중 전액 상환자는 약 250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남은 40만명 중 몇 명이 오는 5월까지 연체를 상환하느냐에 따라 최종 대상자 규모가 확정될 전망이다.

이번 결정이 이행되면 지원 대상 차주의 연체이력 정보가 금융기관 간 공유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신용평가(CB)사의 개인과 개인사업자 신용평가에도 반영할 수 없게 된다. 아울러 차주가 연체이력이 있던 금융사에서 다시 대출을 받을 경우에도 해당 금융사가 여신심사와 사후관리 등에 차주의 연체 정상화 노력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에 조회해둔 연체이력 정보도 활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은행과 저축은행 등 여신을 취급하는 대부분의 금융권이 기존 여신관리와 신규 여신심사를 할 때 한국신용정보원(신정원)과 CB로부터 가장 최근의 신용정보를 조회해 활용하기 때문이다.

지원 대상임을 확인해 보려는 차주는 2000만원이 대출 원금 기준이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 앞선 신용사면 전례를 비춰보면 금융사가 신정원 또는 CB사에 연체됐다고 등록하는 금액이 기준이 돼왔다. 전액 상환했는지는 대출을 실행하고 관리했던 금융사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여당과 정부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차주들이 '보릿고개'를 잘 넘게 해주자는 차원에서 신용사면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이날 협의회에 참석한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와 관련해 "신용회복 및 경제활동에 의지가 있는 서민과 소상공인이 재도전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마련해 드리는 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고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일각에서 '도덕적 해이'나 세수 부족 논란 등이 제기되는 데 대해 "이미 채무를 상환한 사람이 (사면)대상으로, 과거 연체했던 기록이 있었다는 이유로 금융 거래에 불편함을 겪는 문제를 금융권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기에 재정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신용사면이 최종적으로 전액 상환한 분들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을 국민께 충분히 설명해서 부작용에 대한 일부 우려가 커지지 않도록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긍정 효과에 주목한 데 비해 전문가들은 신용사면 정책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부실 차주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신용평가 기반의 대출 시스템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도는 결국 얼마나 성실하게 대출을 갚느냐의 지표이고, 높은 신용을 가지고 있는 차주에게는 낮은 금리와 높은 한도라는 인센티브가 돌아간다"며 "대규모 사면이 반복되면 시장 참여자들에게 '다음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신용사면을 해주겠지'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서민금융의 핵심은 결국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인데, 신용사면은 대출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 대출로 문제를 해결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소득지원 대책 등이 함께 수반돼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선심성 정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는 신용사면 논의가 몇 개월 전부터 숙고를 거쳐 나왔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용사면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돼 왔고, 총선을 앞두고 급박하게 결정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 안정훈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