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하마스 협력’ 주장에 신중한 미국
미국 백악관이 10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북한의 군사협력 가능성에 대해 “그런 징후를 전혀 알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관련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북한과 하마스의 협력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온 한국 국가정보원과 온도 차이가 있는 답변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하마스와 북한 간 군사적 협력이 있다는 징후를 전혀 알고 있지 않다”며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이스라엘 정부가 최근 하마스가 북한산 무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를 내놓았고, 현지 이스라엘인들이 북한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데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앞서 미국의 소리(VOA)는 지난 8일 이스라엘이 공개한 하마스 무기의 F-7 로켓추진유탄(RPG) 발사기 부품이 북한산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후 한국의 국정원도 “동일하게 판단한다”면서 ‘비저-7류’ 등 한글 표기가 식별되는 F-7 신관(포탄 기폭장치) 사진을 추가로 공개했다.
그러나 커비 조정관의 답변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하마스가 북한제 무기를 사용한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곧바로 북한과 하마스 간 군사협력으로 연결지을만한 증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지난해 10월 “직접적 증거는 없다”면서도 언론 브리핑을 열고 “하마스가 북한의 무기와 전술 교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와 달리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은 하마스와 북한을 연결시키면서, 9·19 군사합의 파기의 근거도 ‘하마스식 기습공격의 위험’을 들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했다는 주장을 제시할 때 러시아 선박 입항기록, 시베리아 횡단열차 운행기록, 위성사진 등의 증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https://m.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310171534001#c2b
북한과 하마스 연계설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8일 ‘워 누아르(War Noir)’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군사논평가가 엑스(옛 트위터)에 “하마스가 사용한 무기가 북한제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을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하면서 불이 지펴졌다.
이후 RFA와 VOA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민간 정보기관이나 퇴역 군인들을 인용해 ‘하마스에 북한 비무장지대(DMZ) 땅굴 기술이 전수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마스의 낙하산 침투 작전이 북한 전술 교리와 비슷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당국이 직접 한글이 적힌 하마스 무기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다만 하마스가 북한산 추정 무기를 언제, 어떻게 손에 쥐게 된 것인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1970~1980년대에 중동에 활발하게 수출했던 무기들이 아직까지 이 지역에서 여러 루트를 통해 거래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이란의 중개를 거쳐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2009년 북한제 미사일과 수류탄 등을 싣고 이란으로 향하던 화물기가 태국에서 적발된 적도 있다. 존 커비 조정관은 지난해 브리핑에서 “무기를 반입하는 경로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미국의 신중한 입장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부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보기관 관계자는 “한국은 북한과 하마스의 연계설을 강조해 한반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하려고 한다. 반면 미국은 반미세력을 자극해 확전이 벌어지는 상황을 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북한산 대량살상무기 등이 중동의 비국가조직에 흘러 들어가는 것은 미국에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이자 국제 안보실패를 자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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