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추격만 잘할뿐 장르가 없어…교육·정치 비전 있어야 선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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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이미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선진 강국,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지식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장르가 필요합니다.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선진 강국이 되기 위한 비전을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을 볼 때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지만 글로벌 중추국가로 표현되는 선진 강국, 선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엘리트 교육과 정치권의 비전 경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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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김명수 논설실장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이미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선진 강국,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지식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장르가 필요합니다.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선진 강국이 되기 위한 비전을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매일경제신문이 새해를 맞아 마련한 좌담회에서 철학, 정치학, 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3인의 석학은 정치와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을 볼 때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지만 글로벌 중추국가로 표현되는 선진 강국, 선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엘리트 교육과 정치권의 비전 경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3일 매일경제 본사에서 김명수 논설실장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지식을 수입하는 국가가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국가가 선진 강국, 선도 국가, 전략 국가가 될 수 있다"며 "주어진 판에서 사는 게 아니라 판을 새로 짜는 선도국, 전략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념과 가치, 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개도국, 중진국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아직도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하루속히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명의 석학은 건국과 민주화, 산업화라는 비전을 차례로 달성한 만큼 정치권이 선도국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어떤 선진국이 돼야 하는가.
▷이근 교수=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다. 더 이상 선진국을 추격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공공부문이 민간부문 발전을 잘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거다. 공공부문이 무너지면 한국도 선진국에서 금방 탈락할 수 있다.
▷최진석 교수=진정한 선진국은 선도국, 전략국, 지식생산국이다. 이념과 가치가 있어야 지식을 생산할 수 있고 판을 짜는 전략국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 변화기에 있다는 건 우리에게 축복이다. 선도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우리보다 앞서 선도국 도약 기회를 맞았던 나라들은 이런 기회가 없었다. 우리도 잘 준비하지 못하면 추락한다. 정치가 이 기회를 잡는 데 초점을 못 맞추고 있어 안타깝다.
▷이정동 교수=우리가 잘했던 추격 마인드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날밤 새우면서 실수 안 하고 성공했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운동경기로 치면 끝나지 않는 연장전을 뛰면서 같은 플레이를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다. 핵심은 세대교체가 맞는다.
▷최 교수=선도국은 전략적 레벨에서 자기 의사를 피력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드는 자기만의 장르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제대로 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교육이 유일한 수단이다. 지금 청년정치는 구세대정치와 다르지 않다. 교육을 통해 새 시대에 부합하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이정동 교수=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낡은 용어지만 평생학습, 지속적인 교육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교육 예산 구조는 19세까지 80조원 가까이 집중된다. 23세 이상 취업자, 근로자에 대한 교육 예산은 3조원 남짓이다.
▷이근 교수=우리나라에 부족한 건 엘리트 교육이다. 세대교체 핵심도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지도층이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엘리트 교육을 할 수 있는 선생님도 없고, 시스템도 없으며, 여론도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
▷이근 교수=엘리트 교육의 핵심은 기초교육, 이론교육이다. 자기만의 이론을 갖게 되면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아는 것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다.
―엘리트가 꿈과 비전을 제시하면 선진 강국이 될 수 있나.
▷최 교수=민주화 이후 한국은 꿈을 상실했다. 그게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근 교수=대한민국은 선각자들이 꿈과 비전을 제시하면 빠르게 추격해서 다 해냈다. 지금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꿈을 엘리트가 제시해야 한다.
▷이정동 교수=미국을 보면 자유를 중시하는 헌법적 가치 아래 실리콘밸리에서 모든 걸 해볼 수 있다. (한국은) 장기적인 연구가 없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
▷최 교수=그래서 자유의 개념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은 규제가 너무 강하다. 뭐든지 상상하고 꿈꾸는 건 다 해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노벨상을 소홀히 보는 경향이 있는데 노벨상 수상이야말로 선진 강국,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지표다.
―정치가 가장 문제 아닌가.
▷이근 교수=대한민국 앞에는 '세계'와 '미래'라는 두 개의 화두가 있다. 세계를 개척하는 건 강대국이다. 미래를 개척하는 건 선도국이다. 지금 정치 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정동 교수=우리가 산업화·민주화까지 이룬 건 방법은 달랐지만 모종의 희미한 통합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정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치는 통합과 거리가 멀다.
▷최 교수=민주화 다음을 꿈꾸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밀집도 있는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치는 해방 정국과 비슷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정치가 강국으로 가는 길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근 교수=역사적으로 진영 경쟁은 국가 방향에 대한 비전 경쟁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치는 줄서기 경쟁, 편가르기 경쟁뿐이다. 아고라(광장)에서 토론은 없고, 콜로세움에서 싸움만 하는 형국이다.
―한국 정치 왜 이런가. 해법은 없나.
▷이정동 교수=정치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은 태도 문제에서 비롯된다. 경청과 공감이 없다. 정치인들의 기본 품성과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최 교수=정치권에 처음 가서 느낀 것도 정치인들이 기본적인 염치나 부끄러움을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정동 교수=한국 정치권은 과학적인 태도도 없다. 진리라고 믿던 것도 항상 틀릴 수 있고, 후대에 정답이 나올 수 있다는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과학적 태도다.
▷최 교수=아인슈타인은 '가장 큰 바보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선거철만 되면 제3지대가 나오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비전을 냈다고 하면서 옛날 방식을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문지웅 기자 정리 / 사진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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