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아시아 뜨고 게으른 유럽은 휴양지로 전락”
[Cover Story] 英 싱크탱크 CEBR 창립자 맥윌리엄스 인터뷰
“美·中·印 ‘글로벌 삼극 시대’ 10년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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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인구 대국에 국토 면적도 압도적으로 큰 나라들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다극화’ 시대로의 진입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20세기까지 세계 경제는 유럽과 미국 등 서구권에, 부상(浮上)한 일본이 만든 질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경제권은 소련이 붕괴된 이듬해인 1992년 기준 세계 GDP의 75.3%를 차지했다. 영원히 견고할 것 같던 이 헤게모니에 첫 균열을 낸 건 중국이었다. 1991년 세계 GDP의 1.7%에 불과했던 중국 경제의 점유율은 2021년 거의 11배 수준인 18.4%까지 올라왔다. 인도는 2021년 식민 모국 영국의 경제 규모를 넘어서며 균열을 벌렸다.
앞으로 80년 가까이 남은 21세기 세계경제 지형은 어떻게 될까. WEEKLY BIZ는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 연구소(CEBR)의 창립자 더글러스 맥윌리엄스 부회장(전 회장)을 화상으로 만났다. 영국의 대표적인 경제 예측 전문가인 그는 IBM 수석 이코노미스트, 영국산업연맹 수석 경제 자문역을 지냈다. 테크 분야에도 조예가 깊어 영국의 디지털 기업에 대해 다룬 저서 ‘플랫 화이트 이코노미’가 아마존에서 경영 분야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기도 했다. 맥윌리엄스 부회장은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 중국에 더해 인도가 G3로 등극하며 글로벌 경제의 ‘삼극(tripolar)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도 선전해 4년 뒤인 2028년 GDP 규모 9위까지 오른다고 CEBR은 내다봤다. 이번 세기 세계경제는 갈수록 아시아 중심으로 기울고, 유럽은 부유한 아시아인이 찾는 관광지로 전락할 것이란 혹독한 예견도 나왔다.
◇印, 8년 뒤 세계 3위로
글로벌 거인들의 순위는 엎치락뒤치락을 이어갈 전망이다. CEBR은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 2037년 미국을 추월하지만 20년 뒤 다시 미국에 재역전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구 1위 대국 인도는 해마다 6%씩 성장하며 2032년쯤 GDP 3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기관에 따라 인도의 G3 진입은 이르면 3년 뒤 현실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7년 인도가 일본과 독일을 모두 따라잡고 세계 경제 3강에 오를 것으로 본다. 기관별 예측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10년 내 미·중·인 삼극 체제가 개막한다는 얘기다. CEBR은 더구나 2080년이면 인도가 미국과 중국을 모두 따돌리고 경제 규모 1위로 등극할 것으로 내다봤다. 맥윌리엄스 부회장은 “이번 세기 말에는 인도 GDP가 미국보다 30%, 중국보다는 90%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인도 경제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인도의 광활한 국토가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중국·미국과 마찬가지로 인도처럼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들은 지역별로 쇠퇴하는 곳이 있더라도 다른 한쪽에서 부활하며 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미국에선 캘리포니아 경제가 쇠퇴하고 있지만, 텍사스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이나 영국같이 영토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에선 이런 기회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인구도 무시할 수 없다. 1인당 GDP가 아닌 국가 전체 GDP 차원에서 인구 1위 인도는 몸집을 계속 불려나가기 유리하다. 인도는 노동력을 제공할 젊은 인구 비율도 높고, 고등교육 수준도 높은 편이다. 인도에선 숙련된 노동자들을 낮은 임금에 고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IMF보다는 인도의 G3 등극 시점을 다소 보수적으로 봤다.
“우리가 IMF에 비해 인도 경제를 조금 더 신중하게 보고 있는 것은 맞는다. 그러나 인도가 경제 초강대국으로 가는 경로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기관 예측치를 보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세계 경제 GDP 순위는 등수별로 색깔이 다른 메달을 받는 올림픽과는 다르다. 미국, 중국, 인도가 ‘경제 대국’이란 위치에서 전 세계 경제 흐름을 좌우하게 된다는 게 중요하다. 이는 앞으로 미국이 두 거인이 위치한 아시아에서 어떤 것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中, ‘대만 침공’이란 도박 안 할 것
13일 대만에선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후보와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가 맞붙는다. 이번 선거는 미·중 대리전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다. 라이 후보는 친미 성향, 허우 후보는 친중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양안 관계에 긴장감이 감돌 가능성도 예견된다. 그럼에도 중국이 대만 침공과 같은 모험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맥윌리엄스 부회장은 내다봤다.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으로 본다. 우리 연구소가 계산하기로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서방국가들 제재가 이어지며 중국 경제는 GDP의 15%가 증발하는 수준의 타격을 입을 것이다. 대만을 침공하면 국제정치 무대에서 중국의 입지도 좁아질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만큼 중국 정부가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5년 전 베이징에서 파리까지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자동차경주 대회 경험을 바탕으로 ‘실크로드를 달리다(Driving the Silk Road)’란 제목의 책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중국 정부가 자국민들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시진핑 주석이 원하는 건 ‘트로피’를 얻는 것이다. 덩샤오핑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제도)를 구상한 것처럼 대만 내부 상황을 급격히 바꾸지 않으면서도 대만과의 재결합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만한 정치적 협정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부동산 문제가 중국 경제를 뒤흔들 ‘뇌관’으로 꼽힌다.
“이미 15년 전부터 중국 부동산 문제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중국 부동산 버블이 급격히 꺼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중국에는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집을 산 사람이나 차명으로 주택을 산 사람도 많다고 안다. 이에 주택 가격이 떨어져도 매물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 같지 않다. ‘이 집은 내 소유’라고 밝히고 팔 수 없는 사람들은 가격이 내려도 손실을 감수하고 팔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중국 정부 규제로 돈줄이 마른)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들 부실은 결국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해결될 것으로 본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겠지만 이 외엔 해법이 없다.”
-중국이 이번 세기 중반 미국에 경제 1위 자리를 다시 내줄 것으로 본 이유는.
“인구 감소가 결국 중국 경제 발목을 잡을 것이다. 2037년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시점까지는 인구 감소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50~2060년 이후에는 인구 감소 여파가 중국 GDP에 영향을 미치고 중국 경제도 쪼그라들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는 기간은 2037년쯤부터 2050~2060년까지 20년 안팎이란 뜻이다.”
◇“美 디폴트 일어나면 세계 GDP 10% 소실 충격”
-최근 미국 경제는 GDP 1위를 내주지 않을 만큼 탄탄해 보인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탄탄하고, 미국 연방정부는 상환 조건을 살짝 어긴 적은 있지만 채무불이행에 이른 적도 없다. 여전히 자산 시장에서 미국 국채를 대체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절대 부채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재정지출을 줄이는 재정 건전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지출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거나 특정 국가의 정치적인 불안정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외면하는 이른바 ‘매수자 파업’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역사적으로 글로벌 초강대국이 채무 상환에 실패한 적은 없지만, 만약 이러한 재앙이 현실화하면 세계 GDP의 10% 정도가 날아가는 수준의 충격이 있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미·중·인 등 글로벌 경제의 삼극 체제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 중심 일극 체제나 미·중 양극 체제에 비해 불안정할 수 있다. 확실한 건 글로벌 경제 파워가 세 곳으로 분산되니, 한 나라가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다른 나라에 강요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인도처럼 새롭게 경제적 초강대국에 오르는 나라는 이점도 많겠지만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 것이다. 초강대국이 된다면 성숙한 태도와 다른 국가를 배려하는 이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으로 이해한다. 미국조차도 최근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삼극 체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될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韓, 2028~2038년 GDP 9위 예상
맥윌리엄스 부회장이 이끄는 CEBR 연구진은 한국이 2028년 캐나다, 이탈리아, 멕시코, 러시아를 밀어내고 세계 GDP 순위 9위에 오른 뒤 적어도 2038년까지는 이 위치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영국에서 한국 브랜드 전기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한국에는 ‘강남 스타일’ 외에도 자랑거리가 많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한국 경제가 이제 추락할 일만 남았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나는 한국 경제가 여전히 위로 더 올라갈 동력이 많다고 본다. 두 가지 정도 요인이 있다. 첫째는 기술력이다. 전기차 등 분야 외에 반도체나 배터리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은 우수하다. 서비스 산업 영역에서도 한국은 성장 중이다. 둘째는 성실성이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시간 문제는 개선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면 성실한 근로 문화와 숙련된 노동력이 한국 경제를 현재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도 분명하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한국 경제 성적을 그리스에 이어 2위로 평가한 것과 관련) 한국은 인플레이션 대응도 선방했다고 본다.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물가 상승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한국은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초기 확산 방지나 백신 접종 등의 대응도 양호한 편이었고, 이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당분간 한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15년 후부터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여파가 경제 성장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일본처럼 정년 연장이나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유럽처럼 급격하게 이민 빗장을 풀면 사회 통합이 저해되는 등 ‘사회적 비용’도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이민을 꾸준히 받으면 단기적으로는 노동력 부족에 대응할 수 있고, 장기적으론 더 다양한 인재와 사회적 아이디어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고령화에 따라 연금 지급 개시 시점을 더 늦추는 등 연금 개혁도 해나가야 하는 게 한국의 과제다.”
◇아시아의 시간이 온다
맥윌리엄스 부회장은 가난 탈출을 위해 노력해 온 아시아 국가의 저력에 주목한다.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논문 주제로 ‘동남아시아 산업화’를 다룰 정도로 아시아 경제 이해도가 높은 그는 “아시아 주요국들은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항상 더 개선해보려는 문화가 있다”며 “반면 굶주림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유럽에선 조금만 살만하면 현재 상황에 안주하려는 이른바 ‘게으름’ 문화가 있어 경제력이 뒷걸음친다”고 해석했다.
-아시아 국가 중 특히 주목하는 국가들은 어떤 나라들인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에 주목한다. 기본적으로 인구 규모가 큰 나라들이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니켈을 비롯한 자원이 풍부하다. 베트남은 생산 기지로서 입지를 완전히 굳힌 상태다. 방글라데시 역시 섬유 산업 외에 다른 제조업으로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최근 유럽 경제가 후퇴하는 이유는 무엇으로 보나.
“쉽게 말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다. 노동 시간은 너무 줄였고, 휴일은 너무 늘렸다. 조기 은퇴를 원하는 사람도 많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보다는 현재의 성과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분위기도 강하다. 규제도 문제다. 첨단 산업 분야 규제가 많은 편이라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게 만든다. 유럽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이 적은 것도 도전하지 않는 분위기와 꽉 막힌 규제 탓이다. 나는 유럽연합(EU)이 2026년에 도입하려는 CBAM(탄소국경조정제도)도 결국 보호무역을 위한 관세라고 여긴다.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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