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젓가락부터 자작극까지...경찰이 확인한 허위사실들
檢, 4개 검사실 수사팀 꾸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흉기 피습을 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지난 2일 오전 10시 30분쯤이다. 야당 대표의 신년 일정이라 당시 주변에는 정치부 기자, 방송 카메라, 유튜버가 많았기 때문에 사건 직후 1분~2분 만에 속보기사가 쏟아졌다. 사건을 둘러싸고 초기부터 잇단 의혹이 제기됐다. ‘흉기는 칼이 아닌 나무젓가락’ ‘흉기를 바꿔치기했다’ ‘자작극이다’부터 피의자 김모(67)씨 당적 의혹, 배후설 등까지 등장했다. 10일 경찰은 사건 8일 만에 수사를 마무리하고, 김씨를 구속 송치했다. 최종 수사 브리핑을 통해 일부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영상 분석으로 범행 흉기 ‘개조한 등산용 칼’ 특정
경찰은 10일 최종 수사브리핑 때 김씨가 직접 개조해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공개했다. 흉기는 미국 한 회사에서 제조한 등산용 칼이다. 손잡이가 5cm, 칼날이 13cm로 총 18cm 길이다. 김씨는 이 칼을 지난해 4월쯤 인터넷을 통해 약 1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 칼을 직접 개조했다. 칼등에는 칼날이 없는 칼인데 칼등까지 칼갈이로 예리하게 갈았다.
경찰은 김씨가 범행 당시 어떻게 흉기를 숨겼는지를 직접 시연하며 설명했다. 김씨는 칼의 5cm 정도 되는 손잡이 부위를 제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해당 부분을 면 테이프로 먼저 감고, 다시 유리테이프로 감았다. 이렇게 개조한 칼을 세로로 두 번 접은 A4 용지 사이에 숨기고, 풀로 종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았다. 종이에 감춰진 흉기를 오른손에 든 김씨는 ‘총선승리 200석!’이 적힌 플래카드 뒤로 숨겼다. 왼손에는 플러스펜을 들었다.
경찰 영상분석관은 당시 현장을 찍은 방송사 영상을 분석해 김씨가 오른손으로 종이에 싸인 흉기를 들고 이재명 대표 왼쪽 목 부위를 찌른 것을 확인했다. ‘종이 안에 실제로 칼이 없었다’는 의혹에 대해 이 분석관은 영상을 느리게 재생하면서 “영상을 확대해 보면 종이 속 금속의 칼끝이 보인다”며 “손잡이 쪽은 넓고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흉기 윤곽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종이로 감싼 흉기를 이 대표 셔츠 깃(카라) 위로 찔러 이 대표 셔츠 깃이 뒤로 밀리는 모습이 포착되는 점, 실제 이 대표 셔츠 깃에 칼이 관통한 흔적이 발견되는 점에서 “칼이 아니라면 셔츠 깃을 뚫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칼과 현장, 이 대표 옷에 묻은 혈흔의 DNA가 일치하는 점, 이 대표 목에 난 상처 등도 실제 이 대표가 김씨의 칼에 찔렸음을 증명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김씨가 체포될 때 ‘오른손이 아닌 왼쪽 손에 흉기를 들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경찰은 “체포 때 영상에서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불상의 인물이 왼손으로 흉기를 드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김씨가 아니라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경찰관”이라며 “체포 전 영상을 보면 김씨 옆에 서 있는 한 경찰관이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모습이 확인된다”고 했다.
◇”CCTV로 김씨 숙소 혼자 머문 것까지 확인”
경찰은 시간대별로 피의자 김씨 행적을 밝히면서 CCTV에 포착된 모습을 공개했다. 김씨는 김해 봉하마을에서 양산 평산마을을 갈 때, 부산 가덕도에서 인근 창원시 진해구 숙소를 갈 때 2차례 일반 승용차를 얻어 탄 것 외에는 혼자서 버스나 택시, 열차 편을 이용한 것이 CCTV를 통해 확인됐다. 경찰은 차를 태워준 이들이 김씨와 공모한 정황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1일 오후 7시 46분쯤 가덕도 주민의 차를 얻어 타고 인근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한 모텔 앞 CCTV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은 김씨가 이 모텔로 들어가 숙박한 것을 내부 CCTV로 확인하고 공개했다. 실제 본지 기자가 해당 모텔에 갔을 때 경찰이 공개한 CCTV 속 바닥 장식과 주변 실내장식이 일치했다. 해당 모텔 주인은 “저희 호텔에서 (김씨가) 자고 갔다”며 “혼자 와서 혼자 나갔다. 경찰이 사건 다음날 싹 조사해 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음날 오전 6시 53분쯤 이 호텔 내부 CCTV에 한 번 더 등장한다. 이어 오후 7시쯤 인근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었고, 7시 33분쯤 택시를 타고 가덕도로 향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전날 김씨의 행적을 보면 두 차례 차량을 얻어 탔을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단계에서 김씨와 범행을 공모하거나, 또 교사한 인물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 다만 김씨가 작성한 ‘남기는 말’(변명문)을 우편으로 보내주기로 약속하고, 실제로 김씨 가족에게 보낸 A(70대 남성)씨가 살인미수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김씨의 행적 수사, 진술 등을 종합하면 범행을 함께 모의한 공동정범이나 배후세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 송치 후에도 검찰과 협력해 의혹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 언론사 독자게시판 글 “김씨 것 아냐”
최근 한 언론사 독자의견 게시판에 김씨와 같은 이름으로 쓴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김씨의 글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경찰이 수사 브리핑 때 김씨가 남긴 ‘남기는 말’(변명문)을 요약해 발표했는데, 게시판에 올라간 글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읽혀서다. 심지어 글이 지난 1일 새벽에 올라왔다는 점에서 마치 김씨가 범행 직전 남긴 글처럼 퍼졌다.
해당 글의 제목은 ‘윤 정부와 국힘당의 내년 총선에서 과반수 전략은 이 한 가지뿐이다. 어정쩡한 중도보수 뒤에 숨어 지난 총선같이 아작을 내는 좌익 종북 빨갱이들에 속지 않는 전략 말이다’로, 제목과 유사한 내용의 글이 나온다.
경찰도 수사 단계에서 해당 글의 존재를 확인해 김씨에게 작성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유튜브나 인터넷 등에 글을 쓰지 않고, 댓글 다는 것도 안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경찰은 김씨 진술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씨의 휴대전화·컴퓨터 등의 인터넷 접속(로그) 기록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본인이 아니라고 진술했고, 로그 기록에서도 접속한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배후설 등 여전한 의혹...檢 수사서 해소될까
김씨는 지난 10일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부산지검은 이번 사건 중요성을 고려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팀장은 박상진 1차장검사, 주임검사는 김형원 공공수사부장이 맡았다. 부산지검 특별수사팀은 공공수사 전담 부서와 강력 전담 부서 4개 검사실로 구성했다. 보통은 검사실 1곳에 한 사건이 배정된다.
부산경찰청은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서 김씨의 범행 동기를 “주관적인 정치적 신념에 의한 극단적인 범행”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건 축소·은폐’라며 반발했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모임인 ‘잼잼 자원봉사단’은 부산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 살인미수 사건의 본질은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이고 혐오적인 선동으로, 형사 처벌과 별개로 살인 미수범에게 동기를 부여한 연관 고리에 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경찰이 이 대표 피습 사건을 부실하게 수사했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을 퇴직하고, 부동산 공인중개사로 일해온 전과 없는 60대 남성이 야당 대표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에 대한 의혹도 여전하다. 김씨는 프로파일러 심리·진술 분석에서 사이코패스도 아니었고, 정신 병력도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의 구속 기간은 10일이다. 검찰은 법원 허가를 얻어 다시 최대 10일까지 구속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수사 초기 단계부터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정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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