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석학 아이컨그린 “美 나랏빚 GDP 100% 넘어도 ‘킹달러’ 이어진다”

홍준기 기자 2024. 1. 1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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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위안화·루피화의 도전있지만 아직 기축통화로는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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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국제 금융 체제에서 달러 패권은 이어질 것인가. 위안화의 부상(浮上)과 크립토커런시(암호 화폐) 열풍이 이어지며 달러가 글로벌 금융 왕관을 내려놓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국제 경제·금융 분야 세계적 석학인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달러의 글로벌 지배력은 마치 거대한 빙하가 알아챌 수조차 없이 천천히 녹는 수준으로 매우 느리게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킹 달러’ 시대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낙관론을 편 셈이다. 그는 최근 WEEKLY BIZ 인터뷰에서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의 우위를 무너뜨릴 ‘대체재’는 아직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미·중의 지정학적 파열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달러 블록’과 ‘위안화 블록’으로 양분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최근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의 우위를 무너뜨릴 '대체재'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대공황에 대한 연구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통화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제학자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정책자문위원과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픽=김의균

◇美 나랏빚, 감당 못 할 정도 아니다

미국 부채가 해마다 늘어나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이를 방치하면 할수록 달러 패권이 흔들릴 것이란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7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2024 전미 경제학회 연례 총회에서도 “미국 정부는 달러의 특권에 기대어 재정 지출을 늘리는데, 지출을 늘리다 보면 미국이 지급 불능(디폴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달러 지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막대한 재정 적자를 감수했던 미국 정부는 여전히 확장적 재정 정책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미국 의회예산처(CBO)에 따르면 올해 말 27조4000억달러 수준으로 예상되는 미국 국가 채무가 2033년 46조400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GDP의 100%를 훌쩍 넘긴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컨그린 교수 역시 미국 정부가 나랏빚을 무한히 늘릴 수는 없다는 데 동의한다. 그는 다만 지금 미국 부채가 특정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거나 미국 부채가 감당 못 할 상황까지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15년 전쯤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90%나 그 비슷한 수준이 되면 위험하게 보는 학파가 있었지만, 후속 연구로 이러한 견해는 설득력을 잃었다”며 “연방 정부 채무 비율이 GDP의 100%를 넘어섰다고 해도 현재 미국 경제는 탄탄하며 달러 지위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그 이유로 국가 채무 비율을 구성하는 ‘분모’ 즉 한 국가의 경제력(GDP)을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이 국가 채무 비율을 낮춘 것은 경제성장을 통해 분모를 키운 덕분이란 것이다. 실제로 영국 정부도 1946년 270% 에 이르는 국가 채무 비율을 1976년에는 49%까지 낮췄는데, 이는 영국 GDP가 같은 기간 13배 수준까지 커진 덕분이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미국의 성장 전망은 여전히 밝아 GDP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달러 패권이 흔들릴지 판단할 국가 채무 비율 ‘매직 넘버’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 발전이 미국 재정 상황에 ‘좋은 소식’이 될 것이란 낙관론을 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AI가 다양한 기술에 접목되면서 기업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라며 “기업 이익이 늘면 미국 정부 세수도 늘어나고, 미국 국가 채무의 지속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의 대항마가 있나

두 차례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파운드화는 영국이라는 한 나라의 화폐를 넘어서는 의미였다. 현재 미국 달러화처럼 국가 간 교역에 사용됐다. 그런데 영국의 산업 경쟁력 상실과 전쟁에 따른 부채 증가로 파운드화는 ‘세계에서 가장 믿을만한 통화’라는 왕관을 달러에게 넘겨줘야 했다. 그러나 당시 왕좌를 물려받았던 달러 같은 존재가 지금은 없다는 게 아이컨그린 교수 생각이다. 그는 “영국 파운드가 국제통화 지위를 잃은 것은 영국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미국 경제는 현재 탄탄하며 과거 파운드화를 대체한 달러 같은 강력한 ‘대체재’도 없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나 인도 루피화도 아직 달러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제 결제에서 위안화의 비율은 4.6%로 한 해 전(2.4%)의 거의 두 배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아직 미국 달러(47%)나 유로화(23%)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위안화나 루피화가 달러화 같은 지위를 누리려면 해당 정부가 국제사회에 ‘믿음’을 줘야 한다고 했다. 경제사학자인 아이컨그린 교수는 “역사상 모든 주요 국제통화나 기축통화는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공화국이나 민주주의 국가의 통화였다”고 했다. 그는 “중국은 전권을 가진 공산당이 어떠한 게임 룰도 갑작스럽고 자의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정치 체제상 단점이 있다”며 “중국은 자본을 통제하는 여러 규제 장치도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인도 루피화는 지난해 러시아와 무역 대금 루피 결제 협상이 결렬되는 등 아직 국제사회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는 평가다.

미국 연준이 조만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발행할 가능성도 낮다는 설명이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언젠가는 미국도 디지털 달러를 발행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 의회는 현재 디지털 달러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파 정치인들은 디지털 화폐가 개인의 소비 습관을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화폐가 아직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이컨그린 교수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분절로 ‘달러 블록’과 ‘위안화 블록’으로 쪼개질 수는 있다고 봤다. 그는 “중국이 자기들과 교역하는 나라에 위안화를 쓰라고 강요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는 있겠다”며 “만약 중국의 대만 침공 같은 일이 실제 일어난다면 이러한 분화가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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