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회계 부정 ‘엔론 사태’를 빼닮은 코미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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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패리소 감독의 2005년 작 ‘뻔뻔한 딕과 제인(Fun with Dick and Jane)’은 미국 기업에서 발생한 복잡한 회계 부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잘나가는 정보통신 기업 글로버다인의 홍보실 직원 딕 하퍼(배우 짐 캐리)는 어느 날 홍보 총괄 부사장으로 벼락 승진합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CEO 잭 맥칼리스터(앨릭 볼드윈)는 딕과 재무 총괄 임원 프랭크 바스콤을 자신의 저택에 초청합니다. 이 자리에서 잭은 딕에게 TV 경제 뉴스 ‘머니 라이프’에 출연해 회사의 분기 수익 예측치를 발표하라고 합니다. 재무실 일을 이례적으로 홍보실로 넘긴 것입니다.
딕은 승진의 기쁨에 들떠서 직장 일로 힘들어하는 아내 제인(티아 레오니)에게 사표를 내라고 큰소리치고는 방송국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앵커는 글로버다인의 실적 부진을 집요하게 추궁하고, CEO가 실적 발표 전 보유 주식을 80%나 팔아치운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 묻습니다. 당황한 딕이 쩔쩔매며 망신을 당하고 돌아오니 회사는 아수라장입니다. 직원들은 각종 문서를 파쇄하느라 정신 없고, 잭은 헬기를 타고 도망치듯 떠나버립니다.
딕이 재무 총괄인 프랭크를 찾아 따지자 “그간 글로버다인의 손실을 다른 (가공의) 기업에 넘겨 숨겨왔지만, 그 기업도 사실 우리 회사 소유였다. 우리는 사실 빚더미였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글로버다인은 파산하고 딕은 실업자가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 제인마저 사표를 내면서 가정의 수입원은 완전히 끊깁니다. 딕은 퇴직연금으로 버티자고 설득하지만, 직원들이 적립한 돈이 모두 글로버다인 주식에 투자된 터라 연금도 휴지 조각일 뿐입니다.
이에 곤궁한 딕과 제인은 변장을 한 채 강도짓까지 벌이는 등 좌충우돌하다가 결국 잭을 찾아 복수에 성공한다는 게 이 영화 대강의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습니다. 딕의 옛 동료가 멋진 자동차를 타고 나타나서 “번듯한 회사인 엔론에 취직했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회계 부정 사건 중 하나인 엔론 사태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엔론 사태와 얼마나 유사할까요. 실제 엔론은 글로버다인처럼 회사 바깥에 가공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대규모로 손실을 이전해 감추다가 2001년 파산했습니다. 엔론 직원들의 퇴직연금은 글로버다인과 마찬가지로 자사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대다수 직원들이 회사의 손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자기 회사 주식 보유는 회사 소속감을 높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유도해 정부에선 세제 혜택까지 주어 권장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자칫 회사가 파산할 경우 직원들은 실직하는 것은 물론 퇴직연금도 날리게 됩니다. 달걀을 위험하게 한 바구니에 담은 것이지요. 이 영화는 짐 캐리 특유의 과장된 연기가 돋보이는 코미디이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가벼운 코미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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