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SK·애경 前 대표, 무죄 뒤집혔다…2심 "국민에게 독성 시험"
2심서 금고형 유죄 판결…1심 무죄 뒤집혀
"서울대 실험보고서 통해 위험성 알고도 판매"
이미 유죄 판결 받은 옥시와의 공동정범도 인정
재판부 "국민 상대 만성흡입 독성시험한 것"
독성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에 대해 항소심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1심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무죄 뒤집고 유죄…"실험보고서 보고도 판매? 납득 어렵다"
SK케미칼 사업본부장을 지낸 한모씨에 대해서도 금고 4년형이 선고됐고, 전직 이마트 사업본부장 홍모씨도 금고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외 피고인들도 금고형이 선고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들을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앞서 홍 전 대표 등은 CMIT(메틸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치아졸리논)를 활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부도 이들이 각종 연구 결과 등을 통해 위험성을 파악하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독성이 든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CMIT, 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가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된 것은 1994년 '유공 가습기메이트'가 그 시초이고 이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의 전신"이라며 "당시 유공은 그 안전성에 관해 고민했고, 유공 생물공학연구실에 살균력과 안전성을 충족시키는 적정 농도 등의 실험을 의뢰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당시 유공 생물공학연구실의 검토 결과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연구실은 '살균력을 충족하는 최저 농도가 안전배수를 고려하지 않은 CMIT/MIT 성분의 동물시험 무영향 농도값과 일치하므로 독성 시험을 수행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향후 안전성이 문제가 될 경우 매스컴의 대대적인 비판이 예상되고 기업 이미지를 실추하며 유공뿐 아니라 그룹 전체 제품의 신뢰성에 엄청난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러한 위험부담을 안고서도 반드시 상품화해야 할 정도로 시장성이 큰 품목인 지에 관해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라는 견해를 제시했다"라며 "(하지만) 당시 유공은 출시 한 달 전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쥐(마우스)를 이용한 가습기메이트 간이 흡입노출시험'을 의뢰하고서도 그 결과를 받기 전에 유공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공은 이를 무시하고 제품을 출시했고, 출시 후 1995년 7월 서울대 수의과대학으로부터 그 실험결과를 보고받았는데 그 결과는 백혈구 수치 감소 등의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 조금 더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유공 생물공학연구실에서 1994년에 제기한 의문은 2002년 10월 출시된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와 2006년 10월 출시된 △이마트 가습기살균제의 판매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당연히 제기될 수 있었고, 제기됐어야 하는 질문이었다"라며 "그러나 피고인들은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았거나 그러한 질문을 회피했고 어떠한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상품화하는 결정을 하고 판매했다"라고 판단했다.
특히 "피고인들의 그러한 행위가 제조·판매업자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라며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는 위 서울대 실험보고서가 건네졌는데도 그 실험보고서를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내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 옥시와의 공동정범 여부도 인정…"국민 상대 독성시험"
이날 재판부는 이미 유죄가 선고된 옥시 관계자들과 이들의 공동정범 여부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경쟁관계에 있는 복수의 제조업자가 동일한 유형의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소비자가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종류의 제품들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예정돼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 각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개발·제조·판매에 관여한 사람들 모두가 공동의 주의 의무와 인식 아래 업무상 과실로 결함이 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각각 제조·판매한 것"이라며 "그 결함으로 그 중 두 종류 이상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들 중 특정 피해자가 중복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들의 제조·판매에 관해 업무상 과실이 있는 사람들 간에는 해당 피해자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한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국민을 상대로 장기간 진행한 독성 시험이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제품 출시 전 동물들을 상대로 한 안전성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연령대의 불특정 다수의 국민에게 이 사건 각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유통됐다"라며 "사실상 장기간에 걸쳐 여러 다양한 환경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각 가습기 살균제의 만성 흡입 독성 시험이 행해진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들의 이러한 과실이 다른 공동정범의 업무상과실과 중첩적 또는 순차적으로 경합한 결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사건 폐질환 또는 천식으로 큰 고통을 겪었고,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라며 "피고인들에 대해 그 책임에 따른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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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송영훈 기자 0hoo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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