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술 센 한국인은 가방끈 짧더라...치매와 공부는 유전자 관계 없어”

김명지 기자 2024. 1. 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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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삼성서울병원 연구원, 명우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유전자와 환경의 복잡한 상호 관계가 최종 학력 결정”
삼성서울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진이 17만6400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대만인과 달리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ALDH-2)를 관장하는 유전자가 교육 성취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DB

국내 연구진이 얼마 전 한국인의 최종 학력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연결고리 102개를 찾았다. 삼성서울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진은 한국과 대만의 유전자 은행(바이오뱅크)에 있는 동아시아인 17만6400명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흥미롭게도 학업 성취와 관련된 유전적 연결고리 중 한국인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난 곳이 있었다. 이번 연구진의 전장유전체연관성분석연구(GWAS)에 따르면 한국인은 같은 동아시아인인 대만인과 달리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ALDH-2) 유전자 영역이 교육 성취도에 음의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자가 잘 작동할수록 최종 학력이 짧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숙취가 없으면 주량이 세다고 말한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ALDH-1라면 ALDH-2는 알코올을 분해해서 나오는 독성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배출하는 효소다. 동아시아인 절반은 유전적으로 ALDH-2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ALDH-2 유전자는 염색체 12번에 있다. 한국인은 대만인과 달리 염색체 12번의 ALDH-2 유전자 영역이 교육을 받는 기간과 음의 상관관계, 즉 반비례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유전적으로 숙취가 없는 체질의 한국인은 최종 학력이 낮은 편이라는 뜻이다. 그간 교육 성취와 유전적 요인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연구는 많았지만, 술 분해 유전자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인 결과는 없었다.

논문 1저자인 김재영 성균관대 연구원(왼쪽)과 분당서울대병원 명우재 교수/ 줌 화면 캡처

이번 연구를 담은 논문 제1저자인 삼성서울병원 삼성융합의과학원 김재영 연구원과 명우재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명 교수는 이번 분석 결과가 자칫 결정론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한 가지 유전자가 한 가지 특징을 결정한다’고 떠올리기 쉬운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대다수의 형질은 키처럼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 요소까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명 교수는 성균관대 의대를 졸업하고 최근 10여년 동안 한국인 유전체와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만 해왔다. 명 교수는 지난 2022년 성균관대 원홍희 교수팀,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과 공동연구팀을 꾸려 한국인 11만 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통해 한국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 변이를 찾은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서양인에 대한 연구는 있는데, 동아시아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주제를 찾아서 연구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교육적 성취와 동아시아인 유전체 연구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유럽인을 대상으로는 300만명에 대한 연구도 있지만, 동아시아인으로는 처음이다. 그러니 규모도 최대라고 할 수 있다.”

-유전체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질병에 대한 유전체 자료 대부분이 유럽인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인 치매에 대한 자료도 많지 않다. 앞으로 유전체 자료가 많이 축적되면, 이를 활용해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정밀 의료의 시대가 온다. 문제는 유럽인의 자료가 상대적으로 많이 쌓이면, 상대적으로 동아시아인의 유전자를 예측하는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치매 당뇨 예측하는 시대가 와도, 한국은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아시아 자료를 쌓는 게 정말 중요하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은 교육적 성취가 좀 낮다는 결과가 흥미롭다.

“알코올 분해 배출 효소를 관장하는 12번 염색체에서만 교육 성취도에서 한국과 대만이 다른 결과를 보여 준 게 맞는다. 술을 마셔 본 사람과,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팀을 짜서 구분한 후 술을 마시는 그룹에 대해서만 ALDH-2 영역을 분석했는데도 결과는 같았다. 사람의 유전 변이의 영향이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

“대만인은 음주 여부가 교육 성취나 유전 변이와 연관이 없지만 한국인은 있다는 말이다. 한국인 가운데 술을 마시는 사람들 그룹에서 유전 변이가 학력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적으로 술을 마시는 경향이 강하면, 교육적 성취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건가.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공부를 강제하는 사회가 있다면, 술을 마시는 게 학력과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공부는 해야 하니까. 하지만 술을 마시면 공부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에서는 술 잘 마시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공부를 이어가기 어렵다. 술 잘 마시는 유전자는 이런 식으로 사회적 환경에 따라 학력에 영향을 미친다. ”

-그렇다면 술을 잘 마시면 어차피 공부를 굳이 안해도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 인과관계는 아직 파악이 안된다. 다만 이 연구 결과는 한국 사회는 술을 마시는 것이 교육에 영향을 많이 줬다는 것을 파악했다고 보면 된다. 원인이 뭔지는 아직 모른다.”

-대만 연구팀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는 이게 믿을만한 결과인가 의구심이 있었다. 여러번 확인 끝에 ‘거짓’은 아닌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과에 대해서 함의 등을 제시하려면 좀 더 많은 연구가 더 필요하다. 술에 대한 호불호,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들을 더 시도해 봐야 한다.”

-한국과 대만의 샘플 차이는 없었나. 예를 들어 평균 학력이나 연령이라거나.

“대만은 교육 기간 평균값이 16.2년이었고, 한국은 12.7년으로 확인됐다. 한국은 고교 졸업자가 평균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인 유전체 사업 데이터가 10년 전에 40대 이상을 대상으로 수집했기 때문에 지금으로 보면 50대 이상인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

-교육 정책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럴 수 있다. 한국은 대만보다 의무교육 도입이 늦었다.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면, 술을 마셔도 학교를 다녀야 하니 술 마시는 유전자가 교육 성취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지금 세대를 대상으로 유전체 분석을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국에 중학교 의무교육이 도입된 것은 1989년생이 중학교 신입생이 된 2020년쯤부터다. 국내에서 고교는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2021년부터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다만 고등학교 무상교육이라고 해서, 의무교육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교육 성취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102개라고 했는데, 어떻게 구분이 되고 어떤 형질인 지 알 수 있나.

“19세기 그레고어 멘델의 완두콩 유전자 실험만 생각하면 마치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특성을 결정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고, 키 클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식인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주 여러 개의 유전자들이 아주 조금씩 형질을 결정한다.

유럽의 경우에는 102개가 아니라 2000~3000개 유전변이들이 조금씩 그 사람의 학력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 차이도 10% 정도만 설명하니까 모든 걸 다 설명하는 건 아니다.”

-치매를 일으키는 아포이(APOE) 같은 변이가 밝혀지지 않았나.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와 연관이 있는 아포이는 교육 성취와 큰 연관이 없었나.

“아포이가 있는 19번 염색체와 교육 성취 사이에는 유의미한 관계가 확인이 되지는 않았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대한 동아시아 유전체 자료가 많지 않기도 하다. 유럽 자료에서도 아포이가 학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치매라는 질환이 학업을 모두 마친 60대 이후에 발현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유럽 연구 결과. 조울증과 조현병 유전자는 교육 성취에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 반면, 신경과민증과 비만은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논문 캡처

지난 2012년 네덜란드에서 약 11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유전체 연구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과 교육 성취의 유전적 상관성이 마이너스 0.4, 즉 학력이 높아지면 치매 발병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과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연구에서는 직업 성취가 높은 사람이 치매에 덜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을 통계적으로 보정했을 때도 유의미했다고 한다.

-조울증이나 조현병 같은 정신건강 관련 유전자와 교육 성취에 대한 연구는 없나.

“한국인에 대한 연구는 없고, 해외 연구에서 조울증과 조현병은 오히려 교육 성취가 높은 것으로 나온다. 아무래도 완벽주의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형질이 있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 신경과민증 유전 변이의 경우에는 교육 성취가 낮았다.”

-연구를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지 궁금하다.

“단순히 공부 잘하는 유전 변이를 찾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학력을 높이는 것이 유전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는 지 알 수 있고, 교육을 더 적극적으로 했더니, 당뇨병도 덜 걸리고, 치매에도 덜 걸린다는 등을 확인할 수 이다.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근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만든다고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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