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보기 위해···걸작 세한도를 조건 없이 기증한 마음
기증품 1600여점…세한도·수월관음도 전시
“문화유산 기증의 가치·의미 되새기는 공간”


기증은 크게 존경받고 영원히 기억돼야 할 숭고한 행위다. 애써 수집한 문화유산·현대미술품의 기증도 그렇다. 깊은 안목과 막대한 돈, 시간과 노력이 수반된 소장품의 기증은 사적 자산의 공적 자산화다.
‘나 혼자’ 집에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공 박물관·미술관에서 감상하고 또 역사와 문화를 연구할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일이다.
아쉽게도 국내의 소장품 기증은 문화강국이라 불리는 선진국들에 비해 저조하다. 루브르박물관·뉴욕 현대미술관(MoMA)·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은 소장품 중 기증품 비율이 7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품 43만여점 중 기증품이 5만여점, 국립현대미술관은 1만1000여점 중 절반이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수집품 ‘이건희 컬렉션’이 2021년 중앙박물관에 2만1600여점, 현대미술관에 1400여점이 기증되면서 그나마 기증품 비율이 급등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구입비는 각 연 40억여원에 불과하다. 국격·경제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지만 올해도 마찬가지다. 수준 높은 작품들을 구입하기 힘들다. 그렇다보니 기증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기증의 가치와 의미의 확산, 세제 혜택, 기증자 우대, 기증 유물의 전시·연구 등 기증문화 활성화 노력이 절실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관을 새롭게 단장해 12일부터 전면 공개하고, 국보·보물 등 주요 기증품 1600여점을 선보인다.
조선시대 걸작 회화로 손꼽히며 전시 때마다 주목받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손창근 기증)도 관람객을 맞는다. 손창근씨는 개성 출신 실업가인 부친 손세기 선생(1903~1983)과 자신이 모은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300여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특히 애착을 가졌던 ‘세한도’는 기탁 형태를 유지하다가, 2020년 국가에 기증했다. 손씨는 걸작을 국가에 별다른 조건 없이 기증하면서도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길 원치 않았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조성한 초조대장경의 하나인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제15’(국보·송성문 기증)도 전시된다.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시대 배경이기도 하다.

또 신라시대의 ‘금동관’(변종하 기증), 일본에서 구입해 들어온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윤동한 기증), 고려시대 독특한 청동 유물인 ‘짐승 얼굴무늬 풍로’(국보·남궁련 기증), 세계적으로 20여점만 전해지는 고려 나전칠기 공예품의 하나인 ‘나전칠기 경함’(보물·국립중앙박물관회 기증)도 만날 수 있다.
분청사기 명품인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보물·이홍근 기증), 독특한 형태로 유명한 ‘백자 청화 난초무늬 조롱박모양 병’(보물·박병래 기증), 조선시대 명재상인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손자를 위해 쓴 천자문인 ‘이항복 필 천자문’(보물·이근형 기증), 손기정씨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받아 기증한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보물) 등도 출품됐다. ‘세한도’와 ‘수월관음도’는 5월5일까지만 공개된다.

중앙박물관의 이번 기증관 재개관은 2022년부터 진행한 기증관 개편작업을 마무리하고 기존 공개된 ‘기증 Ⅰ실’에 이어 ‘기증 Ⅱ, Ⅲ, Ⅳ실’을 선보이는 것이다. ‘기증 Ⅰ실’이 기증의 의미·가치를 널리 알리고 문화유산의 기증·나눔과 관련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라면, ‘기증 Ⅱ, Ⅲ, Ⅳ실’은 기증품을 특정 주제로 선보이는 주제전 공간이다.
‘기증 Ⅱ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혼란 속에 문화유산을 지킨 이들의 노력을 살펴보는 ‘문화유산 지키기와 기증’이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해외로 반출되거나 훼손될 위험에 처했던 문화유산, 후손들이 정성껏 지킨 문중 문화유산, 국립중앙박물관회 같은 단체의 노력이 기증으로 이어진 문화유산 등을 선보인다.
‘기증 Ⅲ실’의 주제는 ‘기증 문화유산의 다채로운 세계’다. 옛 생활문화가 오롯이 담긴 문방·규방 공예품, 다양한 재료와 해외의 문화유산 등이 어우러져 있다. 서로 다른 조형성과 미감을 비교하거나 시공을 초월해 어우러지는 조화의 공존의 의미도 살필 수 있다. ‘전통미술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의 ‘기증 Ⅳ실’은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공간이다. 문화유산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한 현대 작가들의 기증품으로 구성됐다.
기증관은 개편으로 고화질 영상 등 전시 전반의 개선은 물론 점자·음성·수어 관련 안내, 촉각체험물 등 문화 취약계층의 접근성 향상도 높였다. 2월 중에는 인공지능(AI) 전시안내 로봇인 큐아이가 본격 운영돼 전시 구성·주요 전시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개편한 기증관을 통해 문화유산의 기증·나눔의 소중한 가치가 더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며 “국보급 기증품은 물론 고화질 영상, 인공지능 전시안내 등으로 기증관이 새해에 더 사랑받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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