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에 진보·보수 어디있나” 유가족들 ‘한동훈 국론 분열 발언’에 분통

김세훈·김송이 기자 2024. 1. 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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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안 의미 이해 못해 정쟁화
국민의 ‘사건 진상’ 알 권리 부정”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1.03 박민규 선임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해 “국론이 분열될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표한 것을 두고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한 비대위원장이 특별법안의 의미 이해하지 못한 채 정쟁화한다”며 반발했다. 한 위원장의 발언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여당·보수 언론이 반복한 특별조사위원회 무용론과 맞닿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과거 특조위를 정쟁의 대상으로 몰아간 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라고 했다. 고 지상준 군 어머니 강지은씨는 11일 통화에서 “세월호 특조위 당시 국론 분열을 유발한 건 한나라당이었다”며 “여당 인사들이 청와대 인사들과 함께 특조위를 방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것이 세월호 관련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고 했다.

생존학생 장애진씨 아버지 장동원 세월호 유가족협의회 총괄팀장은 “제대로 된 조사가 진행됐으면 국론이 분열될 이유가 없다. 재난 참사에 진보·보수가 있을 수 없고, 국가가 참사에 책임을 져달라는 게 유가족들의 요구였다”면서 “그런데 당시 보수단체와 여당(한나라당)이 같이 지속적으로 특조위를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정쟁의 대상이 됐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위원회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중구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D-100 기억다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1.10 한수빈 기자

성역없는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특조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고 한정무군 아버지 한상철씨는 “(한 위원장의 발언은) 국민의 알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안 좋은 기억을 빨리 덮어버리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국민들에게는 사건의 진상을 알 권리가 있다”면서 “정부의 책임회피가 세월호에 이어 이태원 참사 때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사고의 원인과 책임이 명확하게 규명되면 왜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원하겠나”라고 했다.

한씨는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죽었는데 구조적으로 미비했던 점을 지적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며 “세월호 특조위는 한나라당이 계속 어깃장을 놓아서 조사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번에도 같은 우를 범하면 안 된다”고 했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9일 국회에서 열린 제411회국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01.09 문재원 기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여당·정부의 불통이 국론 분열을 유발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민 이태원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실을 알려달라는 건 유가족뿐 아니라 국민의 요구다. 여당이 특조위에 반대하기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는 것”이라며 “참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유가족들이 납득할 수 있게 충분히 해명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유가족들과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진실이 다 밝혀졌다’ ‘참사에 구조적 문제 없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고 유연주씨 아버지 유형우씨는 “경찰·검찰 조사는 실무자의 과실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특조위에서 성역없는 조사가 이뤄진다면 유가족이 가진 의혹도 전부 해소가 될텐데 이를 왜 부정적으로 보는 지 모르겠다”면서 “정부·여당이 일부 자신의 지지세력만 국민으로 여기고 유가족을 설득하는 일은 포기한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과거 특조위원들은 한 위원장이 특조위 활동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 A씨는 “검사적 관점의 발언이지 피해자 요구를 이해한 발언이 아니”라며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시스템을 바꾸려 활동하는 것이 특조위의 주된 업무인데, 특조위가 단순히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활동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 위원장의 발언이 오히려 정치적 혼란을 부추긴다고도 했다. A씨는 “정치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그런 발언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런 발언이 오히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했다. 권영빈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은 “참사 조사를 하면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국민들에게 설명할 기회가 생긴다”며 “특조위를 못 만들도록 할 때 오히려 국론이 분열된다”고 했다.

권 전 위원은 ‘특조위가 검찰 수준의 조사권한을 가지고 1년6개월 간 운영될 것’이라는 한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특조위의 동행명령권은 검찰처럼 마음대로 사람을 잡아갈 수 있는 게 아닌 굉장히 무력한 권한”이라며 ““수사기관의 수사권에는 법적인 강제력이 있고 대상이 불응하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거나 심하면 구속도 시킬 수 있지만 조사권에는 그러한 권한이 없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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