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 흥분' 상태 자살 기도자 살린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⑩

이연호 2024. 1. 1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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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부서방서 김홍규 소방관, 작년 2월 28일 투신 시도 신고 접수
창문 뜯고 집 안 진입…베란다 매달려 있던 자살 기도자 발견
흥분해 소리 지르던 투신 시도자에 자살예방센터 직원 투입…대화 중 신속히 진입해 구조 성공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약 1년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해 2월 광주광역시 동구 장동 차량 화재 진압 당시 모습.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무릎을 꿇고 차량 밑부분을 살피는 대원이 김홍규 소방관이다. 사진=김홍규 소방관 제공.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지난해 2월 28일. 광주 동부서방서에 투신 구조 출동 지령이 내려졌다. 동부소방서에서 119구조대 구조 대원으로 근무 중이던 김홍규(35) 소방관은 출동지인 광주광역시 두암동 한 아파트로 급히 향했다. 출동 중 현장에서의 빠른 대처를 위해 구조공작차 내부에서 로프용 하네스를 착용했다. 아파트 상층에서 하층으로 이동해 인명을 구조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화재 진압 대원들은 구조 대상자 A씨가 뛰어내릴 상황에 대비하려고 인명 구조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김홍규 소방관 등 동부소방서 구조 대원들은 아파트 밖에서 A씨가 보이지 않자 A씨의 집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급히 올라갔다.

A씨의 집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을 개방해야 했다. 그러나 구조 대원들이 진입한다는 것을 인지하면 A씨가 뛰어내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결국 방화문 대신 비교적 소음 발생이 적은 창문을 개방하는 방법을 택했다. A씨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김 소방관은 구조팀장의 지시에 따라 복도 창문의 창살을 조심스레 뜯고 창문을 열어 A씨의 집 안으로 진입했다. A씨는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지만 A씨는 인기척이 나며 구조 대원들이 들이닥치자 극도로 흥분해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김 소방관 등 구조 대원들은 일단 잠시 뒤로 물러섰다.

구조팀장은 A씨의 흥분도가 매우 높아 우발적 투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경우엔 구조 대상자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구조 대원들과 함께 출동한 지역 자살예방센터 직원은 A씨와 일면식이 있었다. 구조팀장은 센터 직원을 베란다로 보내 A씨와 대화를 나누게 했다. 숙련된 센터 직원이 A씨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자 다행히 A씨의 감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김 소방관은 A씨와 센터 직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자세를 낮추고 신속히 베란다로 뛰어들었다. 우선 A씨의 상체를 잡아 안전을 확보했다. 이어 또 다른 구조 대원이 A씨를 베란다 안쪽으로 끌어내렸다.

A씨는 구조되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구조 대원들에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김 소방관은 “괜찮아요. 힘들 때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김홍규 소방관이 지난 2021년 6월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김홍규 소방관 제공.
김 소방관은 그때를 회상하며 “A씨가 지속적인 건강 악화로 신변을 비관해 이 같은 소동을 벌인 후 스스로 신고한 건이었다”며 “이런 힘든 상황에서 우리 소방관을 믿고 연락해 준 것에 고마웠다”고 말했다.

김 소방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기계발에 열심이다. 지난 2021년부터 시작한 무호흡 잠수(프리다이빙)는 점점 노력한 결과 결국 광주소방본부 무호흡 잠수 강사로 활동할 정도의 실력까지 도달했다. 현재는 소방청 프리다이빙 동호회인 프리-디(Free-D)에 소속돼 활발히 활동 중이다.

김 소방관은 “수중 구조 시 수중 구조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에 무호흡 잠수로 구조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소방관은 “각종 사고와 위험의 순간에 구조를 담당하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만, 누군가가 필요로 할 때 꼭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 대원이 되고자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며 “구조·구급 기법을 공부하고 그것을 적시 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홍규 소방관. 사진=본인 제공.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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