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 흥분' 상태 자살 기도자 살린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⑩
창문 뜯고 집 안 진입…베란다 매달려 있던 자살 기도자 발견
흥분해 소리 지르던 투신 시도자에 자살예방센터 직원 투입…대화 중 신속히 진입해 구조 성공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화재 진압 대원들은 구조 대상자 A씨가 뛰어내릴 상황에 대비하려고 인명 구조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김홍규 소방관 등 동부소방서 구조 대원들은 아파트 밖에서 A씨가 보이지 않자 A씨의 집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급히 올라갔다.
A씨의 집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을 개방해야 했다. 그러나 구조 대원들이 진입한다는 것을 인지하면 A씨가 뛰어내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결국 방화문 대신 비교적 소음 발생이 적은 창문을 개방하는 방법을 택했다. A씨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김 소방관은 구조팀장의 지시에 따라 복도 창문의 창살을 조심스레 뜯고 창문을 열어 A씨의 집 안으로 진입했다. A씨는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지만 A씨는 인기척이 나며 구조 대원들이 들이닥치자 극도로 흥분해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김 소방관 등 구조 대원들은 일단 잠시 뒤로 물러섰다.
구조팀장은 A씨의 흥분도가 매우 높아 우발적 투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경우엔 구조 대상자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구조 대원들과 함께 출동한 지역 자살예방센터 직원은 A씨와 일면식이 있었다. 구조팀장은 센터 직원을 베란다로 보내 A씨와 대화를 나누게 했다. 숙련된 센터 직원이 A씨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자 다행히 A씨의 감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김 소방관은 A씨와 센터 직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자세를 낮추고 신속히 베란다로 뛰어들었다. 우선 A씨의 상체를 잡아 안전을 확보했다. 이어 또 다른 구조 대원이 A씨를 베란다 안쪽으로 끌어내렸다.
A씨는 구조되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구조 대원들에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김 소방관은 “괜찮아요. 힘들 때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김 소방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기계발에 열심이다. 지난 2021년부터 시작한 무호흡 잠수(프리다이빙)는 점점 노력한 결과 결국 광주소방본부 무호흡 잠수 강사로 활동할 정도의 실력까지 도달했다. 현재는 소방청 프리다이빙 동호회인 프리-디(Free-D)에 소속돼 활발히 활동 중이다.
김 소방관은 “수중 구조 시 수중 구조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에 무호흡 잠수로 구조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소방관은 “각종 사고와 위험의 순간에 구조를 담당하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만, 누군가가 필요로 할 때 꼭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 대원이 되고자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며 “구조·구급 기법을 공부하고 그것을 적시 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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