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 남은 개는 죽는다”…동물권 위해 만든 개고기 금지법 아이러니

최정석 기자 2024. 1. 11. 15:4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개고기 금지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개 사육 농가들은 현재 기르고 있는 개들을 오는 2027년까지 처분해야 할 상황이다.

남은 개들을 모두 안락사할 경우 개고기 금지법을 제정한 핵심 명분인 '동물권 보호'에 역행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당초 개고기 금지법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명분은 동물권 보호였다.

동물권 보호단체나 정부에서 남은 개들을 전부 보호소로 데려간다 해도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 식용법 ,3년 뒤 30만~90만마리 농장에 남을 것”
정부·동물권 단체, 안락사·살처분 외 뾰족한 수 없어
“농장 출신 개, 성격·건강 등 문제로 입양 어려워”
한국의 개고기 산업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누렁이'(Nureongi)​의 한 장면. /연합뉴스

개고기 금지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개 사육 농가들은 현재 기르고 있는 개들을 오는 2027년까지 처분해야 할 상황이다. 정작 정부나 동물권 보호단체 모두 마땅한 처분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남은 개들을 모두 안락사할 경우 개고기 금지법을 제정한 핵심 명분인 ‘동물권 보호’에 역행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동물권 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이들은 2027년까지도 팔리지 못해 개 농장에 남아있을 개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다. 법 세부 내용을 짜는 단계에서부터 이 부분을 고려했으나 현재까지도 아무런 방침을 정하지 못했다.

대한육견협회는 현재 전국 개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개들을 적게는 150만, 많게는 200만마리로 추정 중이다.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에 따르면 매년 38만8000마리 개가 식용으로 소비되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3년 뒤에는 30만~90만마리 개가 농장에 남아있게 되는 셈이다.

남은 개들을 일단 보호소에 데려간 뒤 입양 희망자를 찾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동물권 보호단체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반려동물이 아니라 가축으로 길러지는 과정에서 개들이 사람을 너무 무서워하거나 사나운 성격이 되는 탓에 선뜻 입양하겠다 나서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입양을 해도 몸이 건강하지 못해 병원 신세를 지을 가능성이 높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개 사육 농장에서 자란 개들은 개고기 제공을 위해 사료를 과도하게 먹느라 몸집이 매우 커진다”며 “몸도 무거운데 뜬 장 같은 환경에서 장기간 지내다 보니 고관절에 다들 문제가 있어, 구조 후 병원에 보내면 치료비만 수백, 수천만원씩 나오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농장주들 사이에서는 대규모 안락사나 살처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기도에서 600마리 규모 개 농장을 운영하는 A씨는 “개고기 소비층 자체가 매우 좁아 끝물이랍시고 개고기를 찾는 사람이 갑자기 늘지도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팔리지 않는 개들은 법이 시행되기 전에 모두 죽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3년 뒤 못해도 50마리 정도는 팔리지 않고 농장에 남을 것 같은데, 이들을 전부 내가 키울 수는 없지 않나”고 덧붙였다.

당초 개고기 금지법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명분은 동물권 보호였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명을 훌쩍 넘어가면서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했고, 개고기 수요도 과거보다 크게 떨어진 결과 동물권 보호 여론이 커진 것이다. 개 애호가로 유명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법 제정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그런데 3년 뒤 팔리지 못한 개들이 사실상 대량으로 살처분된다면 동물권 보호라는 명분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권 보호단체나 정부에서 남은 개들을 전부 보호소로 데려간다 해도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 말고는 방법이 없다. 농축산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 해에만 구조된 유실‧유기동물 11만3440마리 중 1만9043마리(16.8%)는 끝내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안락사당했다.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비참하고 마음 아픈 일이지만 불가피한 희생이라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 농장에서 고통받는 개들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고기 소비를 법으로 막지 않으면 농장에 사는 개들이 번식하면서 더 많은 고통과 희생이 있을 것”이라며 “그런 장기적인 희생을 끊어내는 게 법의 근본 취지라고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