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키지 않고, 청년 참여 강조한 탄녹위···“2040년에 태어날 사람들에게 미안”
김상협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 위원장과 탄녹위는 지난 7월 ‘탄소중립·녹색성장 이행관리를 위한 점검단’ 위원을 위촉했다. 정부가 2022년에 온실가스 감축을 잘 이행했는지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이행점검단에는 ‘청년·미래세대’ 5명도 포함됐다.
앞서 2021년 탄소중립위원회에서는 ‘2002년생 활동가’ 오연재씨가 위원직을 사퇴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실질적 의사 결정 주체’가 될 수 없었다는 이유였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9011437001
이번에 이행점검단에 참여한 ‘청년·미래세대’ 위원들을 두고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청년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들러리’만 설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지난 7일 조혜원 기후커뮤니티 ‘턴테이블’ 공동대표(에너지·산업 전환 점검팀), 류상재 기후변화 청년모임 빅웨이브 공동대표(온실가스 감축 점검팀)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려는 현실이 됐다’. 탄녹위는 지난 4일 “기후위기 당사자가 직접 참여한 첫 탄소중립·녹색성장 이행점검”이라며 이행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청년·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점검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기후위기 당사자 눈높이에 맞춘 점검을 실시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이행점검단으로 참여한 조 대표와 류 대표는 결과 공표 일정도 4일까지 몰랐다. 이들은 “김 위원장과 탄녹위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라며 “실질적 권한과 제대로 참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참여 했다’는 것만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받았다’는 정당성만 부여했다”라고 입을 모았다.
김 위원장과 탄녹위가 약속한 이행점검단의 역할은 크게 3가지였다. 이 중 두 사람에게 가장 매력적인 역할은 에너지, 건물, 수송, 산업 등 온실가스 배출 부문들을 점검해 ‘지표가 적절히 설정됐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조 대표는 “정부의 이행을 평가하는 지표를 점검해 수정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부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꾸면 실질적 정책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였다.
조 대표는 ‘아무런 관리를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전기 수요보다 얼마나 수요를 감축할지’에 대한 정량적 목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문제는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전기 수요 예측에 대한 감축 목표가 없는 것”이라며 “현재 목표대로면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수요 예측대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수송 부문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류 대표는 ‘중·대형 내연기관차도 친환경차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량적 지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류 대표는 “총 중량 3.5t을 초과하는 중·대형차량은 차체가 크고 주행거리가 길어 수송 부문 배출량의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에 대한 정량적 지표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5일 이행점검단 위원들은 ‘검토 사항 미반영 여부’ 안내 메일을 받았다. ‘이행 지표’에 관해서는 일괄적으로 “지표 관련 사항은 차기 점검 시에 반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류 대표는 “모든 이행 지표와 관련한 의견은 (이번 이행 점검에) 반영되지 않았고, 차기 점검 때에야 반영하는 걸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탄녹위는 이행점검단에 ‘이행 점검과 관련한 분석 결과가 적절한지, 추가 분석이 필요한지’ 의견도 요청했다. 이를 점검하기 위해 조 대표는 한국전력에 ‘데이터’를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다른 위원들 조차 “나도 가지고 있는 자료인데 왜 안주냐”라고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소관 부처가 정해지지 않아서’ 점검할 수 없었던 지표도 있었다. 조 대표는 “김 위원장은 점검단 위원들이 ‘원하면 관계 부처를 다 불러서 1~2번 간담회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나 이는 단 한번도 이행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급박한’ 회의 일정도 문제였다. 류 대표가 정리한 내용을 보면, 탄녹위는 이행점검단 회의 ‘하루 이틀 전’에야 자료를 보내고, 점검 의견을 달라고 요청한 경우가 잦았다. 류 대표는 “나 혼자 이행점검단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많은 청년단체와 단체에 속해있지 않은 청년들과 이야기하면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라며 “하지만 짧은 기간으로 인해 논의가 아예 불가능한 구조였다”라고 짚었다.
조 대표는 “초안 보고서에 회의 때 나온 적 없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걸 보면서 ‘이미 짜인 판에 우리가 들어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며 무력감이 들었다”라며 “의결권이 청년들이나 기후위기 당사자에게 간다고 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계획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2040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그 때) 거기 있었는데 뭐 했냐’라고 말할 것 같다”라며 “피해가 더 클 20~30년뒤 태어날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류 대표는 “이행점검단 임기도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라서 ‘사후적으로 제한적인’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다”라며 “1년의 이행점검 계획에 맞는 임기와 필요한 권한을 줘야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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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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