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몰래 녹음기’에 대법 “증거사용 불가”…교사단체 “건강한 교육 생태계 조성돼야”

김동환 2024. 1. 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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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 정서적 학대 혐의로 초등교사가 기소된 사건에서 학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에 저장된 내용은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11일 나왔다.

녹음기에 저장된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던 1·2심의 유죄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판단에 교사 단체는 환영 입장을 나타내고 "교육공동체의 고민을 대법원이 숙고하여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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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책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다’ 등 교사 발언 담겨
대법원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 증거능력 부정”
교사노동조합연맹, 입장문에서 “교내 갈등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법원 깃발. 연합뉴스
 
아동 정서적 학대 혐의로 초등교사가 기소된 사건에서 학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에 저장된 내용은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11일 나왔다.

녹음기에 저장된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던 1·2심의 유죄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판단에 교사 단체는 환영 입장을 나타내고 “교육공동체의 고민을 대법원이 숙고하여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이날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씨의 상고심에서 A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던 A씨는 2018년 자신의 반으로 전학 온 학생에게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학교를 안 다니다 온 애 같다’, ‘학습훈련이 전혀 안되어 있다’ 등 발언은 자녀의 가방에 학부모가 몰래 넣은 녹음기에 담기면서 드러났다.

앞서 A씨에게 심한 말을 들었다는 취지 이야기를 자녀에게 전해들은 학부모가 아동학대 정황 파악을 위해 녹음기를 가방에 몰래 넣으면서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A씨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도 대부분 발언이 유죄로 인정돼 벌금 500만원형이 떨어졌다.

반면에 대법원은 녹음 파일 등이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2항, 제4조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4조도 불법검열에 의해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대법원은 “피해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한다”며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교사가 교실에서 수업시간 중 한 발언은 교실 내 학생들에게만 공개된 것일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대화자 혹은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다.

다만, 녹음 파일 외에 다른 증거만으로도 죄가 입증된다면 법원은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쟁점이 유사한 다른 아동학대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웹툰 작가 주호민씨 아들에 대한 특수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부모가 몰래 녹음한 수업 내용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된 터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은 입장문에서 “증거로 인정된다면 학교 내부의 무단 녹음이 합법적으로 용인돼 교육활동이 불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며 “대법원 결정이 교내 갈등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교사노조는 “교사의 동의 없이 수업 중 녹음이 일상화된다면 교사들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수행할 수 없다”며 “교육적 판단에 의한 활동보다 방어적 역할만 수행해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조는 “그동안 자녀 보호 앱(애플리케이션)을 악용한 교실 도청 만연 등을 우려하며 교육당국의 대책을 요구했다”며 “교육현장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이 변화하고 몰래 녹음을 조장하는 불신 사회가 아닌 신뢰가 바탕이 되는 건강한 교육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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