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추가, 돈은 계약대로"…공공IT 정부 갑질 "이제 안돼"

황국상 기자 2024. 1. 11. 1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CJ올리브네트웍스-KCC정보통신, 국방부 상대 사실상 전부승소
정부에 유리한 법규에 책임회피 공무원 관행 등 원인
"공공IT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등과 함께 행정망 부실사태 초래" 지적도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CJ올리브네트웍스와 KCC정보통신 등 민간 IT서비스 기업이 국방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간 공공 IT사업에서 관행처럼 여겨져 왔던 발주처의 '대가없는 추가과업 요구'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자체에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민간 기업이 정부부처의 제재 등 행정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은 많지만 공공 사업을 수주한 기업이 정부와의 계약에서 문제가 생긴 데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정부·공공 기관과의 거래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향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공공 발주처는 대개 거래관계에서 '갑'(甲)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을'(乙) 입장인 민간 기업이 대놓고 소송까지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CJ올리브네트웍스 등이 소송을 제기한 것도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국내 IT시장에서 정부·공공기관의 비중이 상당한 만큼 정부 사업에 대한 불복 소송은 승패소 여부를 떠나 추후 다른 사업 수주 길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2020년 소송을 제기한 자체가 해당 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CJ올리브네트웍스 등 기업들이 느낀 부당함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중재절차 있어도 무소용, 책임회피 관료사회가 갑질 초래"
CJ올리브네트웍스, KCC정보통신은 2015년 국방부가 발주한 군수통합 정보체계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봤다. 육·해·공군이 각자 운영해 왔던 군수 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사업이었지만 각 군에서 자신들의 특성을 반영한 추가 기능을 부가적으로 요구하면서 추가과업에 대한 대가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워서다.

사업 포기가 계속 진행하는 것보다 손해가 더 적다고 판단한 컨소시엄 구성사, 하도급 업체들은 무더기로 사업에서 손을 뗐고 남아있던 CJ올리브네트웍스 등이 해당 기업들의 업무까지 떠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되자 국방부는 남아있는 업체들에 또 다시 지체상금(배상금)을 부과했다. 이에 CJ올리브네트웍스 등이 국방부를 상대로 대가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이 처음 제기된 2020년 8월부터 약 3년 반이 지난 이달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7부(부장판사 이오영)는 CJ올리브네트웍스 등의 추가과업으로 당초 계약에 명시된 것보다 더 많은 기능의 솔루션을 확보하게 됐으니 결국 국방부가 부당이득을 취한 것과 같다고 봤다. 부당이득에 해당하는 만큼의 대가, 즉 추가과업 대가를 지급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또 사업의 지연이 업체들의 잘못으로 발생한 게 아님에도 지체상금을 부과한 결정도 잘못됐으니 지체상금도 반납하라고 선고했다.

LG CNS도 보건복지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다. LG CNS를 비롯해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맡은 복지부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개편 사업 역시 추가 과업에 대한 대가지급을 이유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대표적 사업이다. 아직은 법정 다툼으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양측간 감정의 골이 깊은 만큼 언제고 소송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민간기업 사이의 거래였다면 당연히 추가과업이 필요할 때 적정대가를 합의하고 당초 계약을 수정해 진행하면 될 일이지만 유독 정부·공공기관이 발주하는 IT사업에서는 이같은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부가 작성하고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예산으로 진행되는 사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걸핏하면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관료 사회의 특성 때문에 이같은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중견 IT서비스 기업의 대표는 "당초 계약에 명시한 사항이 제대로 구현됐는지,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수행사·발주처 중 어느 쪽 과실이 더 큰지 등을 두고 논쟁이 생길 수 있다"며 "문제는 국가계약법상 이같은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 대한 규정이 정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계약금액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더라도 과업변경 심의위원회 등 여러 중재 절차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수행사가 투입한 추가작업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기는 어렵다"며 "공무원 입장에서는 애시당초 사업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해야 하는 사안이기도 하기에 더더욱 그렇다"고 했다. 또 "일단 수주한 사업은 끝내기 전에 수행사가 발을 빼고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며 "공무원이 최종적으로 사업 산출물에 대해 검수를 해줘야 프로젝트가 끝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손실을 보고 사업을 털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했다.

"공공사업 '갑질' 관행, 숱한 행정망 사고의 이유"
공공IT 사업에서의 이같은 발주처 갑질은 과거 10여년간 진행돼 온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등과 함께 공공IT 시스템의 부실을 초래한 이유로 지목된다. 대기업 참여를 막은 탓에 혁신 솔루션이 공공 IT 시스템에 발붙일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 데다 추가과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지 않은 관행도 이어지며 정부·공공사업에서 아예 발을 뺀 곳들도 많다. 정부가 말로만 민간·공공의 디지털 전환을 독려한다고 하지만 정작 이에 필요한 예산은 제대로 집행하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사업은 박한 예산에도 과업 추가가 되는 경우가 빈번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사업수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국내IT서비스 산업과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공공IT사업에서 정당한 대가체계가 자리잡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 임원은 "계약사항에 대한 다툼을 원활한 합의로 해결하지 못하고 장시간에 걸쳐 막대한 소송비용을 들여 법원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한국의 공공IT 시장의 수준을 보여준다"며 "공공IT 사업의 발주 및 계약 관행에 대한 대대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