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 사수하려는 노소영... "원심 뒤집을 유일한 카드"

이현승 기자 2024. 1. 1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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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이혼 항소심 첫 정식재판 연기
최 측 김앤장 선임에 노 측 반발 “재판부 변경 목적”
서울고법 가사2부, 새로운 판결로 법조계 주목 받아
“노 측, 현 재판부가 유리하다고 판단 가능성”

법원이 최태원(64)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를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최 회장 측이 재판부 변경을 노려 김앤장법률사무소(김앤장) 변호사를 선임했다”며 반발했던 노 관장 측은 기존 재판부에서 심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노 관장 측이 지금 재판부의 판결 성향을 봤을 때 본인에게 더 유리한 판결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재판부를 사수하려 했을 것이라고 본다. 가사소송은 일반 민사소송보다 판결 내용에 재판장의 재량이 폭넓게 작용하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김시철 부장판사가 이끄는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는 기존 관행을 깨고 배우자가 부모에게 상속 받은 주식을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하고 유책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를 억(億) 단위로 끌어올리는 등 파격적인 판결을 해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 뉴스1

◇ 최태원 측, 재판부 친척 다니는 김앤장 선임...법원, 재배당 않기로

11일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재판부 재배당 검토 요청 사유, 재판의 진행 경과 및 심리 정도, 법관의 사무분담 및 사건 배당에 관한 예규 등을 종합해 재배당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밝혔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항소심 첫 변론기일은 이날 오후 2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법원이 재판부 재배당을 검토하면서 연기됐다. 재판부 재배당은 최 회장 측이 재판을 앞두고 김앤장 변호사를 추가 선임한 데 따른 것이다. 재판부 소속 한 판사의 친척이 김앤장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법관 친족이 변호사로 근무하는 로펌이 해당 법관 담당 사건에 선임될 경우 재판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어 재배당을 검토한다.

재산분할 청구액을 1조원대에서 2조원대로 올리고 본 재판을 준비 하던 노 관장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미 양측이 서면 46차례, 재판부의 석명 요청 여러차례, 수백 건의 증거제출을 하는 등의 재판 절차를 거쳤음에도 추가로 변호사를 선임한 것은 재판부 재배당을 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 측은 “노 관장 측이 재산 분할과 위자료 청구 취지를 확장하고,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쟁점을 이 소송에서 추가로 주장하면서 김 이사장 소송을 대리하는 김앤장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한 것”이라며 “노 관장 측이야말로 항소심 재판부 변경을 위해 특정 법무법인을 선임하는 쇼핑을 했다”고 반박했다.

◇ 청구액 2조원대로 올린 노소영 측, 재판부 ‘과감한 판결’ 성향 고려?

노 관장은 2022년 12월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심 재판부가 SK㈜ 주식 50%(649만여주·가치 약 1조100억여원)는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을 언급하며 ‘완전한 패소였다’고 말했다. 항소심에서 재산 분할액을 대폭 상향하는 판결을 이끌어 내야 원심을 뒤집고 승리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현재 두 사람의 이혼소송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 강상욱·이동현 고법판사)는 기존 가사 소송에서의 관행을 깬 파격적인 판결로 법조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노 관장 측이 이부분을 고려해 재판부 재배당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고등법원 / 뉴스1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11월 2일 한 부부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가정주부인 아내가 결혼기간 중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주식을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이렇게 결혼생활 도중 상속·증여 받은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보고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 게 기존 판례였다. 한 배우자가 특유재산 가치 유지에 적극 협력했다면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결정이 있지만 인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고법 가사2부는 “남편이 의사로서 경제활동을 했고 그 소득 상당부분을 아내가 관리해온 점을 고려하면, 아내가 혼인기간 중 받은 주식 배당금 역시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하는 것이 형평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내가 주식 배당금을 원천으로 보유 주식 수를 늘린 이상, 부부 공동재산을 통한 주식 수 증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도 했다.

이 재판부는 작년 6월 유책 배우자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를 2억원으로 정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혼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위자료 액수가 30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혼인파탄의 원인과 책임 정도, 혼인지속기간 등을 고려해 1억~3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경우도 있으나 흔하지는 않았다. 법원 안팎에서도 한쪽 유책이 명확한 이상 위자료 범위가 현실화 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유책 배우자인) A씨는 경제적 측면에서 (상대방인) B씨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으면서도 상당기간 다수의 여성과 여러차례 부정행위를 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측면에서 우리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도 등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며 “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진 A씨의 고의적인 유책 행위로 인해 B씨에게 발생한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형로펌의 가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김시철 부장판사는 기존 고법 판사들이 하지 않는, 굉장히 과감한 판단을 하는 인물로 법원 안팎에서 유명하다”라며 “노 관장 측에서는 재판부가 본인들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원심을 뒤집거나 최소한 재산분할금액을 늘려줄 만한 유일한 카드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혼상속 전문 조인섭 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는 “이 재판부에서 특유재산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한 것을 보고 노 관장 측에서 소송가액을 높이는 전략을 세웠을 수 있다”며 “앞선 재산분할 청구액 1조원대는 최 회장 재산의 50%는 안 되는 금액인 것 같고, 이번에 청구한 금액이 청구 가능한 최대치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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