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자원硏 "올해 국내서 리튬 찾는다…'핵심광물 생산국' 될 것"
"'자원민족주의'가 확산되며 광물 패권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광물 시장을 장악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핵심광물 공급망을 다양화할 때입니다."
11일 서울에서 열린 과학미디어아카데미에서 이평구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자원연) 원장은 지질자원연이 "한국을 리튬과 희토류 등 핵심광물 생산국으로 이끌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자원보유국에 한국이 가진 선광·제련기술을 이전하고 생산된 자원을 한국 기업에 공급해 광물 공급망을 확대한다. 또 저탄소 광물 공정 기술을 개발해 중국이 진입하지 못한 '녹색광물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올해에는 광물이 있을 것으로 AI가 예측한 지역에 실제 광물이 있는지 현장조사에 나선 뒤 국내 리튬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 미국은 IRA, 유럽은 배터리법… 규제 통해 중국 견제하는 2차전지 시장
리튬과 희토류는 2차전지 생산의 핵심 원료소재다. 한국의 2차전지 생산 기술은 뛰어나지만 정작 원료는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한다. 중국, 칠레, 아르헨티나 등 원료 생산국에서 '부르는 게 값' 식으로 원자재 흥정에 나선다 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수입해올 수밖에 없다.
2023년 관세청 무역통계에 의하면 2차전지 양극재의 핵심 재료인 전구체의 약 97%는 중국에서 국내로 들여온다. LG화학, SK온 등 국내 기업이 핵심광물 확보를 위해 해외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중국과의 합작인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제조기업의 중국 참여 비중을 25% 미만으로 줄이도록 했다. 전기차 제조 과정에서 중국과의 합작 비율이 25% 이상일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미국의 거대 전기차 시장에 자리잡아야 할 국내 기업으로서는 큰 타격이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환경 규제를 도입했다. 전지 생산 전주기에 걸쳐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등 2차전지 수입에서 친환경성을 주요 지표로 삼는다. 전문가들은 "리튬·희토류 생산 과정에서 친환경성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해오던 중국이 EU의 규제로 인해 수출에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질자원연은 카자흐스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호주 등 핵심광물 보유국에 선광·제련 기술을 이전, 현지에서 생산한 리튬과 희토류를 국내 기업으로 수출하게끔 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중국이 진입하지 못한 '녹색광물' 시장을 먼저 개척하겠다고 나섰다.
● 광물자원 전쟁 승리하려면… 선광·제련 기술부터 AI 탐색까지
리튬과 희토류는 선광과 제련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쓸모있는 '자원'이 된다. 정경우 지질자원연 자원활용연구본부장은 "이전에는 국가들이 광물 채굴에 주로 나섰다면 이제는 채광 이후 단계인 선광, 제련 기술이 자원 경쟁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채굴된 그대로의 광석은 '돌멩이'에 불과하다. 니켈이 1.5wt.%(중량백분율) 포함돼있던 원광에서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 니켈을 다른 구성성분에서 분리하는 '선광' 과정을 거치면 니켈 함유도가 20wt.%로 높은 정광을 얻을 수 있다. 정광을 필요한 순도로 추출해 니켈이 99.9wt.% 이상인 화합물로 만드는 과정이 '제련'이다.
지질자원연은 연구원이 보유한 선광, 제련 기술을 핵심광물 자원부국에 이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원장은 "기술을 유료로 이전하거나, 기술은 무료로 이전한 후 실제 자원이 생산되면 국내 기업으로 자원을 수출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 자원보유국이 제련 기술을 보유하게 되면 공정 단계에서의 중국 의존도가 자연스럽게 낮아지게 된다.
해외 자원강국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 외에 국내에서도 자원 채굴에 나선다. 연구자 시절부터 인공지능(AI)을 활용, 국내 탄광에 위치한 리튬, 니켈 등 핵심광물 탐색을 주도했던 이 원장은 올해 광물이 있을 것으로 AI가 예측한 지역에 실제 광물이 있는지 현장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국내 리튬 자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 녹색광물시대 이끌 '저탄소 공정'과 '폐배터리 재활용'
정 본부장은 "녹색광물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세계가 '탄소제로'를 위해 각종 규제를 도입하는 가운데 광물 공정에도 저탄소 기술이 적극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본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저탄소 공정은 중국이 아직 나서지 못한 광물 시장의 '빈틈'이다. 지질자원연은 공정 단계에서의 탄소 배출을 줄인 저탄소 공정과 폐배터리활용 기술로 빈틈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리튬 염호 기술'은 지열수, 유전염호 등 리튬을 함유한 저농도 염호에서 리튬을 회수하는 기술이다. 지하에서 염수를 끌어올린 뒤 햇볕에 말려 물을 증발시키면 리튬이 함유된 농축액을 얻을 수 있다. 광석 채굴보다 공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이 적어 친환경 리튬 기술로 불린다.
그러나 자연증발·농축으로는 리튬의 수요량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염수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지하수가 고갈된다는 또 다른 환경 문제도 생겼다. 지질자원연은 'DLE(Direct Li Extraction) 기술'을 개발 중이다. 비증발 리튬추출기술로 기존 자연증발농축법보다 공정시간을 줄이고 생산량을 높인다. 지하수가 아닌 해수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해수에서 리튬 등 자원만 추출하고 물은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다.
다 쓴 폐배터리에서 리튬, 흑연 등을 추출해 재사용하는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도 계속해서 개발 중이다. 이 원장은 "10년 내 전세계에서 폐배터리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폐배터리를 회수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주요 전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김병수 자원활용연구본부 책임연구원 팀은 리튬인산철(LFP) 폐 리튬이온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폐배터리를 파쇄한 후 1200도 이하에서 부분적으로 녹인 뒤 필요한 성분만 분리·회수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의 블랙매스를 95% 이상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지질자원연은 올해 3월 베트남,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 주요 자원보유국을 초청해 본격적인 핵심광물 기술 협약을 이끌어 낼 '리튬 핵심 광물 국제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원장은 "희토류 파동 때와 동일한 전략이라면 글로벌 2차전지 공급망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지질자원연은 핵심광물 제련 및 생산기술을 확보해 공급망을 다양화하고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상용화를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