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축제 이상고온에 ‘취소·연기’ 이어져…동물학대 논란도

경북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미천에 11일 출입통제선이 쳐져 있다. 이곳은 스케이트와 썰매, 얼음낚시 등을 즐기러 매년 20만명이 찾는 ‘안동암산얼음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김현수 기자

“매년 이맘때면 아이들 웃음소리로 동네가 떠들썩했지. 올해는 글렀어.”

경북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미천에서 11일 만난 김현식씨(66)가 반쯤 언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이 하천은 매년 ‘안동암산얼음축제’가 열리던 곳이다.

스케이트와 썰매, 얼음낚시 등을 즐기러 매년 20만명이 찾을 정도로 영남권을 대표하는 겨울축제였지만 올해는 문을 닫았다.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인해 얼음두께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서다. 미천 곳곳에는 ‘수심이 깊고 결빙이 약해 얼음 위 출입을 절대 금지한다’는 대형 펼침막과 함께 출입통제선이 쳐졌다.

안동에는 지난해 12월 이례적인 겨울비와 이상고온이 이어졌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안동지역의 강수량은 76㎜로 전년인 2022년(3.8㎜)보다 20배 늘었다. 평균기온도 영하 2.9도에서 영상 0.9도로 2도나 올랐다. 따뜻한 날씨와 많은 빗물이 미천으로 합류되면서 ‘동장군’이 물러난 것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축제 특성상 얼음두께가 최소 20~25㎝는 유지돼야 하는데, 일부 구간은 얼음두께가 3㎝도 안 됐다”며 “얼음이 이렇게까지 얼지 않은 건 처음이다. 내년 축제 개최 여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31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미천에서 열린 암산얼음축제에서 시민들이 빙어낚시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올겨울 유례없이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거나 겨울비가 쏟아지는 등 이상기후 탓에 겨울축제를 준비하는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고민에 빠졌다.

기상청 기상자료 개방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평균기온은 13.7도로 각종 기상기록의 기준으로 삼는 시점인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연평균 기온으로 집계됐다. 51년간 기상기록을 측정한 이래 ‘가장 더운 해’였다는 뜻이다.

지난 12월 8일엔 일부 지역 낮 기온이 20도를 넘는 등 곳곳에서 역대 12월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국 97개 기후관측지점 중 12월 최고기온을 기록한 지역은 59곳이다.

‘겨울축제의 원조’로 유명한 강원 인제빙어축제도 취소됐다. 인제지역에는 포근한 날씨와 함께 예년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비가 내렸다.

인제군 관계자는 “소양강댐 수위가 높아져 행사장 조성과 결빙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얼음낚시 등 겨울축제에서 벗어나 캠핑과 물을 주제로 한 새로운 축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1월10일 강원 화천군 화천천에서 열린 화천산천어축제에서 한 관광객이 ‘산천어맨손잡기’에 참여해 손으로 잡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7년부터 시작한 평창송어축제는 개막일을 지난해 12월 22일에서 29일로 일주일 연기했다. 이 축제는 2016년과 2019년에도 이상고온 등의 영향으로 강이 제대로 얼지 않아 개막을 연기한 바 있다.

일본 삿포로 눈꽃축제·중국 하얼빈 빙등제·캐나다 윈터카니발 등과 함께 세계 4대 겨울축제로 꼽히는 화천 산천어축제도 2017년 축제장 얼음이 녹아 일주일 연기되기도 했다. 올해도 공무원을 동원해 눈을 치우는 등 얼음을 얼리기 위해 곤욕을 치렀다. 눈이 쌓이면 얼음이 잘 얼지 않아서다.

일각에서는 물고기 맨손 잡기 등 동물학대 성격이 강한 겨울축제 전반에 대해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물권행동 카라·동물자유연대·환경운동연합·녹색당 등 37개 단체는 지난 6일 화천군청 앞에서 ‘산천어 맨손 잡기’ 프로그램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산천어 맨손잡기는 고통을 느끼는 어류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고 죽기 전까지 공포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잔혹한 프로그램”이라며 “동물학대가 허용되는 분위기로 인해 평소에는 동물을 함부로 하지 않던 사람들조차도 산천어를 쥐고, 던지고, 내리치고, 방치하면서 학대를 저지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경남 강원연구원 박사는 “기후변화로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는 기간이 짧아져 낮에 태양 빛을 가려줄 산봉우리 등 지형지물이 없는 곳에서는 얼음이 얼기 어렵다”면서 “인제빙어축제장처럼 대하천에서 이뤄지는 겨울축제는 향후 계속 열리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