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다른 남북 관계’ 상상 능력, 가장 큰 평화의 힘입니다”
평화교육 진행 “한·중·일 동포 청년, 만남 통한 변화 모습 가장 기억나”
[서울&] [커버스토리] “현재 통일 담론, 젊은층 관심 갖게 결론 열어놓고 재구성해야”
통일 강조 말고 만남 필요성부터 시작
“시민단체는 ‘우리 사회 의사소통 펌프’
‘활동가도 노동자·생활인’ 인식 중요해”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년, 사회 앞에 서다’를 시작합니다. 출세와 성공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세상에서 평화·인권·환경·노동·성평등 등을 위해 애쓰는 청년들에게 ‘활동의 이유’를 묻는 기획입니다. 월 1회 연재.
“남북관계의 여러 가능성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서 그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또 다른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일 마포구 마포동에 위치한 ‘사단법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사무총장 홍상영, 이후 우리민족)에서 만난 양두리(36) 부장이 밝힌 자신의 주요한 활동 목표다.
양 부장이 8년째 활동하고 있는 우리민족은 1996년 6월 북한의 식량난 소식을 접한 6대 종단과 주요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국민운동조직’으로 출발했다. 우리민족은 이후 대북지원사업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체로 성장했다. 1996년 대북 밀가루 지원에서 시작한 단체는, 2005년에 트랙터를 생산하는 ‘우리민족·금성·동양 농기계공장’을 준공하기도 했다. 또한 2006년에는 경기도와 함께 평양 강남군 당곡리 협동농장의 종합적인 마을개선 사업을 진행했다. 남북이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시험장’ 구실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소원해지고 북한과의 교류 사업이 크게 줄어들자, 우리민족도 “대북지원사업뿐아니라 남북 협력이나 평화 공존의 필요성에 대해 알리고 또 해외에 있는 우리 민족 동포들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환돼갔다. 양 부장이 우리민족에 들어간 2015년도 바로 그 전환기 속에 있었다.
“아는 후배가 ‘언니는 학생회도 했으니까 시민사회단체도 잘 맞지 않을까요’라면서 우리민족의 채용 소식을 알려줬어요.”
당시 양 부장은 2009년 이화여대 법과대학 학생회장을 지낸 뒤 이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사회진출로 방향 전환을 했던 참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도 갖고 깃발 들고 집회도 나갔고, 또 단과대 내부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그런 활동을 좀 더 넓은 영역에서 하는 시민사회단체 분야를 추천한 것이고, 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우리민족에 들어간 양 부장은 입사 몇 달 만에 개성을 방문하게 된다. 2015년 6월부터 약 6개월 동안 진행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주최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 현장실무를 우리민족이 맡으면서 양 부장도 두 차례 방북하게 됐다.
“첫 방북이라 정말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근데 일단 가니까 긴장이 신기함으로 바뀌었어요.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되게 편한 느낌이었고요.”
양 부장은 “당시 만난 사람 중 북쪽에서 안내원으로 나왔던 또래 여성 ‘진 선생’이 참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양 부장과 진 선생은 이동할 때 팔짱을 끼고 다니거나 양 부장이 가져간 카메라로 함께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두 번의 만남 뒤 헤어질 때 양 부장은 특별한 감정을 경험하게 됐다고 한다. 그것은 ‘이 버스에 올라타면, 우리는 아마 살아있어도 영영 볼 수 없겠지’라는 감정이었다.
“정말 제가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었어요. 하다못해 아프리카 깊숙한 밀림에 있는 친구라도 내가 돈과 시간을 들이면 어떻게든 찾아볼 수 있을 텐데, 북쪽 사람은 거리도 멀지 않은데 다시는 절대 못 보는 상황인 거죠.”
양 부장은 이후 우리민족에서 평화교육을 담당하면서도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양 부장이 하는 평화교육 중 하나가 ‘평화축구’다. 2001년 영국에서 출발한 풋볼포피스(F4P)는 축구교육을 통해 분쟁지역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는 국제교육기관이다. 출발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이들이었다. 가령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이 두 명에게 함께 손잡게 한 뒤 드리블 연습을 시킨다. 아이들은 게임 같은 드리블 연습에 열중하는 사이 스킨십과 함께 협동심을 기르게 된다. 우리민족은 ‘다문화·조선족·남북 어린이들이 한 구장에서 축구하는 날을 꿈꾸며’ 2013년 평화축구를 한국에 처음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평화축구 교육을 해오고 있다.
“평화축구를 진행하면서 참여한 학생들에게 제가 북한에 가본 적이 있다고 얘기하면 아이들이 너무 신기해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되묻는 아이도 많아요.”
양 부장이 아이들에게 “북한에 가봤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축소하지 않기 위해서다. 양 부장은 ‘평화로운 사회’를 ‘더 많은 걸 상상할 수 있는 사회’라고 정의한다. “분단과 끝나지 않은 전쟁이 우리 상상력을 얼마나 제한해왔는지 느끼게 되면서,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북한도 절대 가볼 수 없는 곳이 아니고, 북한 친구들도 언젠가 만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미래와 한반도의 미래를 바꿀 거라고 양 부장은 믿는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이 차츰 현실이 됐을 때 남북 갈등도 크게 완화되거나 해소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고 대결과 갈등의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일본에 가긴 하잖아요. 그런데 북이랑은 만나는 게 전혀 없다보니 편견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양 부장은 평화교육을 통해 ‘만남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실제로 여러 차례 했다고 말한다. 2019년 양 부장이 진행한 ‘코리안 청소년 평화 이니셔티브’(KYPI)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당시 양 부장은 한국과 중국 조선족, 그리고 재일동포 이렇게 세 그룹 고등학생 30명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중국 연변과 백두산에서 4박5일간 진행했다. 양 부장은 “그때는 한국과 중국에서 반일 감정이 굉장히 강했고,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도 부정적이었다”며 “그러나 아이들이 만나고 나자 너무도 크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말한다.
“애들이 처음엔 쭈뼛쭈뼛했지만, 준비했던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윤동주 생가도 가고 백두산도 같이 가고 그러면서 나중에는 서로 친해져서 헤어질 때는 막 껴안고 울고 그랬어요. 서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똑같이 진로 고민, 연애 고민이 있고, 또 아이돌 좋아하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이해로 넘어가는 모습을 제가 그 현장에서 봤어요.”
양 부장은 이런 기회가 남북 청소년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부장은 이렇게 여러 경험을 하면서 어느새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성장은 무엇보다 “어떤 현상이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타난다.
“그전에는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그냥 잘 지냈으면 좋겠다, 전쟁 안 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단체에 들어와서는 남북이 잘 지내기 위해서 국내외 단체와 소통하거나 유엔과 직접 협의하는 등 선배들의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움직임이 수반된 생각을 많이 듣고 배웠어요. 그러니까 그전에는 남이 뭔가 해결해주겠지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할 수 있는 걸 어떻게든 찾는 모습이지요.”
양 부장은 이런 변화는 시민사회단체의 기본적인 속성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단체는 작은 개인의 목소리를 어떤 거대 담론 안에 제시하고 알려내는 작업을 하고, 또 반대로 정부 등 큰 단위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일을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시민사회단체는 이렇게 사회의 아랫부분에서 위까지 의사소통이 잘되게 함으로써, 사회가 잘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의사소통 펌프’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양 부장은 그러나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낮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제가 시민단체에서 일한다고 소개하면 제일 많이 듣는 답변이 ‘좋은 일 하시네요’ 혹은 ‘봉사활동 하시는 건가요?’ 등이에요. 그러면 저는 ‘시민사회 활동가들도 월급 받아서 생활을 꾸리는 생활인입니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양 부장은 “새해를 맞아 꼭 우리 단체가 아니어도 본인이 관심 갖고 있는 분야의 어떤 단체를 잘 알아보고 후원하면 어떨까 싶다”며 “후원도 하고 활동 참여도 하면 그 조직에 굉장히 큰 응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 부장은 그렇게 시민들에게 후원을 부탁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가 더욱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바로 “새로운 상황에 적합한 이론과 실천방안을 계속 찾아가는 노력”이다.
“흔히 젊은 세대는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그것이 젊은 세대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가 볼 때 현재의 통일 담론은 실현 가능성도 없고 잘 와닿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양 부장은 그래서 “통일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진짜 완전히 열어놓고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통일이라는 결론을 지어놓고 ‘답정너’처럼 ‘우리는 언젠가 통일할 거야’ 하는 것은 사실 주입식 교육이잖아요. 연애에 비유하면,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는 ‘소개팅’부터 시작해야지, 처음부터 결혼 타령을 하면 더 결혼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또 사람은 만나도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 비혼주의자도 있을 수 있거든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게 모든 걸 다 열어놓고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양 부장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해마다 성장해왔다고 생각하지만, 활동 8년차인 올해도 또 한 번의 성장을 꿈꾼다. 올해 목표는 “자신의 시각을 갖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여러 선배의 시선을 잠시 빌려 세상 보는 법을 배웠던 시간이었어요. 이 선배 안경도 써보고 저 선배 안경도 써보고 했는데요. 이제는 내 시선을 갖고 맨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더라도 개인마다 나이도, 경험도, 생각도 다 다르니까요.”
‘자신만의 시각’을 갖는 과정에서 양 부장은 어쩌면 ‘성장통’을 경험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통을 겪는 평화통일 활동가가 많을수록 평화·통일 담론은 젊은층과 새 세대가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생명력 있는 담론이 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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