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이창용 "태영건설 사태, 한은이 나설 때 아니다"
금통위원 5명 모두 '3.50% 유지'…이창용 "적어도 6개월 금리 인하 어려워"
"비트코인, 확실한 투자재로 자리 잡아…내재가치 시험해 볼 시기"
(서울=연합뉴스) 민선희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사태가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하며 "한은이 나설 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은 특정 산업이나 특정 기업의 위기에 대응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태영건설 사태에 대해 "태영건설 사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중에서도 위험관리가 잘못된 대표적인 사례"라며 "태영건설 사태가 부동산PF, 건설업의 큰 위기로 번져 시스템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적다"고 진단했다.
이어 "개별 사례가 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진다면 한은이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한다"며 "지금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한은이 할 수 있는 시장 안정 조치를 '대포와 소총'에 비유하며 "대포를 쏠 수도 있고, 소총으로 막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소총도 쓸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금통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동결했다.
이 총재에 따르면 이 총재를 제외한 5명의 금통위원 모두 향후 3개월 금리를 3.50% 수준에서 동결하면서 물가 안정 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관련해서는, "금통위원들 모두 금리 인하에 대해 논의하는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이 총재는 사견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이 총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승인한 데 대해 "비트코인이 확실히 하나의 투자재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투자자산으로서 내재 가치, 안정성 등에 대해 시험해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 금융중개지원대출(이하 금중대) 한도 유보분을 활용해 중소기업 지원에 나선 것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확대됐기 때문인가.
▲ 현재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가 부동산PF 시장을 안정시키고 태영건설 문제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제가 코멘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한은은 특정 산업이나 특정 기업의 위기에 대응하지 않는다. 그런 불안으로 인해 시장안정에 충격이 왔을 때만 정책 대응을 한다. 지금 사태가 시장 불안을 가져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은이 나설 때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금중대 지원 결정과 태영건설 문제를 연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금중대 지원을 결정한 것은, 상당 기간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지방 중소기업 등을 선별적·한시적으로 지원하자는 취지다. 사실 금통위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조윤제 위원은 현 상황에서 금중대 지원하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물가 안정을 강조하고 통화 긴축을 유지하겠다는 한은 정책과 다른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위원들은 금중대 지원이 경제 전체의 유동성을 크게 늘리지는 않으면서도, 선별적 지원을 통해 고금리 기조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었다.
--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부동산PF, 건설업 전반 위험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 태영건설 사태가 부동산 PF나 건설업 위기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태영건설 보시면, 부채비율이나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PF 보증액이 다른 건설사와 차별화되게 높은 수준이다. 태영건설 사례는 부동산PF 중에서도 위험관리가 잘못된 대표적인 케이스이자, 정부가 매번 강조해온 질서 있는 구조조정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태영건설 사태가 부동산PF, 건설업의 큰 위기로 번져 시스템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질서 있는 구조조정으로 시스템 리스크 없이 조정이 이뤄지면 한은이 나설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런 개별 사례가 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진다면 한은은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하겠지만, 지금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말씀드린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을 시사했고, 중견 건설사 부실이 더 드러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데.
▲ 개별 산업이나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정부가 관리한다. 그로 인해 시장 전체가 흔들리면 (한은 입장에서) 여러 툴이 있다. 시장이 흔들리는 정도에 따라 대포를 쏠 수도 있고, 소총으로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런 툴을, 소총도 쓸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정부가 대주단 협약과 워크아웃 등을 통해 질서 있게 정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 추가 인상 필요성이 낮아졌다고 했는데,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기준금리 견해에 변화가 있나.
▲ 3개월 시계 최종금리 수준과 관련해 지난해 11월에는 저를 제외한 네 분이 3.75%까지 열어두자, 두 분은 3.50% 수준을 유지하자는 의견이었다. 이번에는 다섯 분 모두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전망 경로에 큰 변화가 없다면, 기준금리를 3.50%로 충분히 장기간 가져감으로써 물가 안정 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3.75%까지 열어두자는 견해를 바꾼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전체적으로 물가 (상승률) 둔화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11월에 비해 유가 상승 가능성,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 대외 경제 불안 위험이 많이 완화됐다.
--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한다'는 표현이 유지됐다. 지난 11월에는 특정 기간을 가정한 것은 아니지만 '6개월 이상'일 것이라고 했었는데, 견해에 변화가 있나.
▲ 금통위원들이 3개월 이상 시계에서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미국 연준의 물가 상승률 변화에 따른 금리 결정, 물가가 계속 안정될지, 경기예측 등을 봐야 하지만, 제 사견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금리를 인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 한은이 올해 2∼3분기 중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시장 기대는 과도하다고 평가하나.
▲ 3개월 시계에서의 금통위원들의 생각은 앞서 말씀드렸다. 금통위원들은 현재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 상황을 보며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래서 시장 기대가 저희 생각에 부합하는지 답변하기 어렵다.
-- 작년 말부터 국내외 통화정책 기조 전환 기대로 시장 금리가 하락했다. 금융 여건이 다소 완화적으로 변화한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미국에서 지난해 말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재정위기 때문에 올랐던 미국 국채 수익률이 내리는 움직임이 있었다. 양으로 보면 우리도 그 정도 변동했다. 어떤 면에서는 제가 매번 농담으로 우리나라 금리를 내가 결정하는지, 연준에서 결정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는 하다. 이 질문은 결국 시장 기대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데, 아까 말했듯 금통위원들은 금리 인하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 현 상황에서 금리인하는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 크다고 말했는데, 중립 금리 수준으로 금리를 내리는 것도 이에 해당하나. 재작년 3.25%까지 금리를 올릴 때 중립 금리 상단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라고 했었는데, 지금도 이러한 판단은 유효한가.
▲ 현재 3.50%가 중립 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견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금리를 인하할 경우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은 꼭 중립 금리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기 상황 등을 봤을 때 다양한 투자처가 있다면 경기 부양 효과가 있겠지만, 부동산 가격이 조정받고 있는 현재 국면에서 섣부른 금리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연착륙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 신생아 특례대출 등이 주택시장이나 가계부채를 자극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신생아 특례대출의 경우 저출산 문제 등을 고려하면 좋은 제도라고 본다. 다만 소득 수준이 안 되는데 돈을 빌려주는 게 젊은 층을 도와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젊은 층이 집을 살 수 있도록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본인들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까지 빌려줬다가 다시 금리가 오를 경우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책금융에서도 어느 정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부합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고금리, 고물가가 이어지고 가계부채도 많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비 여력 제약이 나타나는 듯하다.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평가하나.
▲ 젊은 층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고금리로 인한 소비 여력 제한은 자영업자 등 전반적으로 다 겪는 일이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통화정책이 이를 통해 물가(상승률을) 낮추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중간 점검을 해보면 지난해 11월 예측했던 것보다 소비는 다소 둔화해 성장률을 낮추는 쪽으로 작용했다. 반면 수출은 생각보다 높아졌고, 그래서 성장률 (전망은) 2.1%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성장률 수준뿐 아니라 소비와 수출의 양극화를 시사할 수도 있는 만큼 일단 지켜봐야 한다.
-- 미국에서 비트코인 ETF가 승인됐는데, 국내 금융시장 영향은.
▲ 비트코인은 확실히 하나의 투자재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비트코인이 처음 도입될 때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화폐의 대체재가 될 것이냐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제 그 논의는 마무리가 된 듯하다. 비트코인이 바람직한 투자자산이냐고 하면 변동성과 내재가치 등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보게 되는데, ETF가 승인됐으니 투자자산으로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고 안정성이 있는지 시험해 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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